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茫茫沙海
 
바람의 나라에 모래는 친구다. 사막에 부는 바람은 모래를 품어 올린다. 여기저기 벌판을 날아오르는 모래바람. 그 바람의 정수(精髓)가 쌓여 금빛 모래산이 되었다. 모래는 태양의 이글거림에 지쳐 바람이 그리웠다. 바람은 자신을 불태우며 친구를 찾았다. 모래는 고열로 헐떡이면서도 자신을 찾아온 친구의 마지막 몸짓을 울음으로 받았다. 우우우웅. 이로부터 모래산은 명사산(鳴沙山, 밍사산)이 되었다.

모래는 달밤에도 친구를 그리며 울었다. 솟구치는 눈물은 샘이 되고 샘은 곧 못이 되었다. 수정보다 맑고 진주보다 귀한 생명. 바람은 친구의 그런 눈물만을 모았다. 천년을 마르지 않게, 천년을 묻히지 않게 지켰다. 그리하여 초승달 같은, 아미(蛾眉)같은, 여인의 손톱과도 같은 월아천(月牙泉)이 생겼다.


탐사단이 사막의 열기에 지칠 즈음, 저 멀리 명사산이 보인다. 바람의 정수가 저리도 많았던가. 동서 40㎞ 남북 20㎞의 모래가 황금빛 칼날을 곧추세운 채 웅크리고 있다. 그 칼날 사이로 카라반 행렬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낙타 떼만 분주하다.
탐사단도 카라반인양 낙타를 타고 명사산의 능성이를 오른다. 숨 막힐 듯 폭발하는 모래산의 아우성이 온 몸을 파고든다. 망망사해(茫茫沙海). 눈을 감아도 보이는 태양과 모래뿐인 세상이 서럽도록 찬연하다.

딸랑! 방울소리 들린다. 능성이를 넘어오는 한 무리의 낙타가 보인다. 기원전부터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막을 넘어온 이들의 후세들이 오고 있다. 그들을 이곳까지 오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이득, 종교적 열정과 구원, 미지에의 동경과 사랑, 나아가 영토 확장을 통한 제국건설이란 낙원 찾기였다.
하지만 낙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막의 모래폭풍은 쉬지 않았고 태양의 저주는 계속됐다. 원대한 꿈과 희망은 신기루가 되었다. 그리하여 넘어지고 스러진 자들이 알알이 모래가 되었다. 그리고 뒤따라온 자들에게 말했다. 우우우(???). 어찌 예까지 왔느냐, 어서 가라 타는 목마름 누르고 어서 가라.
마른번개도 때때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천만근 몸뚱이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 신기루였다. 저 건너 보이는 푸른 호수, 오아시스를 향한 열정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낙원이 그곳에 있단 말인가.

소록소록 연못에 비 내리고
원앙새 쌍쌍이 울음 운다네.
들꽃 향기 한들한들 넘쳐흐르고
냇가엔 아름다운 여인들의 춤
휘영청 달빛에 살포시 분칠했네.

돈황의 여인을 그리며 사막을 건넌 자는 낙원을 찾은 것이 아니다. 낙원을 찾을 자격도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고작 쾌락을 ?기 위해 죽음을 넘나드는 여행을 시도하는 미련한 자는 없기 때문이다. 몇몇의 장사치들이 찾는 낙원은 이미 낙원이라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신기루를 향한 믿음과 인내의 질주가 다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흐릿해질 때, 꿈인 듯 맑은 샘물이 살아남은 자들의 몸과 정신을 어루만졌다.
명사산이 끝나는 곳에 있는 월아천. 지금은 비어있는 사원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채찍질하고 신기루로 길을 열어준 영혼들에게 감사의 향과 눈물어린 샘물을 바쳤으리라. 월아천의 샘물은 그 어떤 굳건한 신념과 정신을 가진 자에게도 욕심을 내려놓고 심신을 편안하게 할 것을 가르쳐주는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리하여 실크로드를 오가는 이들에게 만족하는 법과 쉬어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낙원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이 길을 내고부터 동서고금의 역사는 얼마나 많은 낙원을 그려왔던가. 낙원을 향한 부단한 노력은 수신제가(修身齊家)에서부터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기까지 그 명분 또한 다양했으며, 낙원 찾기와 낙원을 건설한다는 구실 아래 저마다 편리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이동하고 교류하고 침탈하고 병합했다.
그들에게 있어 월아천은 낙원이 아니다. 낙원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의 샘터다. 그들의 낙원은 천산과 곤륜의 하늘에 걸린 만년설처럼 항상 동경과 이상이고 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늘로 오르는 길을 내고 별을 따는 것, 낙원건설은 그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신의 옆에 있다. 그러나 찾지 않는다. 아니 보지 못한다. 왜 찾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가. 낙원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많이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허공에다 거대하고 화려한 낙원을 만들고 오늘도 신기루에 취하여 허상을 뒤쫓는다. 왜 그러한가. 지칠 줄 모르는 욕심과 편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낙원은 또한 아무에게나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모래폭풍과 신기루를 뚫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본 자, 그의 눈에만 보여준다. 그런 자 과연 몇이나 있는가. 사기공갈과 권모술수, 이합집산과 당리당략, 무질서 무원칙이 횡행하는 오늘, 수신제가에서 치국평천하까지 과연 몇이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가.

태양은 지치지도 않는가. 탐사단은 화주(火洲)라는 이름에 걸맞게 뜨거워진 대지에서 몸을 피한다. 그리고 느낀다. 이 순간이 또한 낙원이 아니던가. 그리고 또 깨닫는다.
낙원은 영원하지 않다. 다만 영원하길 소망할 뿐이다. 우주의 시간에서 잠시 앉았다 일어서는 낙원은 찰라 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낙원은 소중하고 황홀하면서도 뼈저린 사랑인 것이리라.
 
<인천일보 실크로드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