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이번 주와 다음 주 연속으로 2008 설 연휴 대목을 노리는 국내외 화제작들이 대거 선보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라듸오 데이즈> 외에도 <더 게임>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명장>등이 이번 주에, <마지막 선물>과 <6년째 연애중>, 톰 행크스-줄리아 로버츠-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세 스타 연기자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만으로도 놓치기 아까운, <졸업>의 노명장 마이클 니콜스의 <찰리 윌슨의 전쟁>등이 다음 주에 선보인다. 여로 모로 2007년의 설 연휴보다는 한층 더 화려한 메뉴다.

와중에 너무나도 초라해 사실 언급하기조차 여의치 않은 두 편의 '작은 영화'가 눈길을 끈다. 그 첫째는 평론가인 나도 그 이름을 변변히 기억하지 못하는 고은기 감독의 <내사랑 유리에>. <뚫어야 산다>(2002)와 <풀밭 위의 식사>(2006)에 이은 세 번째 장편으로, 3억 원에 빚어졌다는 저예산 독립 영화다. 얼마 전 웅지를 튼 서울 명동 소재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 스페이스'에서 오는 전국 단관 개봉된다. 결국 상기 화려한 상업 영화들에 맞서, 설 대목에 한판 승부를 벌여보겠다는 대표 독립 영화인 셈이다.

헌데 이 감독, 독립 영화다운 재치 내지 치기를 적극 동원해 국내 영화판에선 흔치 않은 단연 '튀는' 러브 스토리를 빚어냈다. 스타일적으로나 내러티브적으로나 현실과 환상 간의 경계를 완전히 붕괴시켜 자기만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펼치는 것. 독립 영화치곤 적잖은 공을 들인 미장센이 아주 인상적인데 아니나 다를까, 3억 원의 제작비 중 무려 1억 원을 미술에 쏟아 부었단다.

그 이미지는 기존의 국내외 화제작들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것들이다.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골수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페르시 아들론의 <바그다드 까페>를 벤치마킹했다는데, 그 밖에도 <베티 블루>가 연상된다. 혹자는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이나 여균동 감독의 <미인> 등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따라서 그 친숙한 이미지들을 개성 만점의 낯선 스타일로 구현한 감독의 연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특히 감독의 자유분방한 탈-현실적 상상력을 재기로 받아들인 것인가 치기로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성 싶다. 나는 현재, 그 중간쯤이다. 어떻든 특이한 국산 러브 스토리와 조우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은기. 이제부터 기억해야 할 또 한명의 한국 감독이다.

<타인의 삶> 및 <포 미니츠> 등에 이은 또 한 편의 수준급 독일 영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무슨 3류 통속 영화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그 속내는 퍽 주목할 만한, 재미와 감동을 겸비한 감동의 러브 스토리다. 원제는 '엠마의 행운'(Emmas Glueck/Emma's Bliss). 적잖은 덕목을 지닌 영화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런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