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햇살이 밝고 바람도 적당하게 부는 봄날 아침입니다. 법원 마당의 인도를 따라 가지런히 피어 있는 진분홍빛 꽃들이 화사하고 나뭇가지마다 올라오는 파릇파릇한 새 잎들이 햇볕에 반짝거립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정신없이 지내는 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새 잎이 나는 것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법원마당에는 이렇게 따뜻한 봄볕이 가득하지만 혹시 각종 소송사건으로, 형사 피고인으로 또는 그 가족으로 법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마음에 차가운 겨울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당장 처한 상황 때문에 겪는 외롭고 차가운 마음이 법원에 들어섰을 때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고 위로받고 있을까 아니면 혹시 더 상처받고 더 억울하게 느끼는 일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업무로서 매일 하는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는 재판이고 재판 하나하나가 당사자의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데 혹시 우리가 무심하게 놓치고 지나간 것은 없는지, 그로 인하여 민원인이나 당사자가 상처받은 일은 없었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만족감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당한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모든 관계를 '나-그것의 관계'와 '나-너의 관계'로 구분했습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서로 응답하지 않고 배려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는 않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나-너의 관계'는 서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관계입니다. 최근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나 민사재판의 구두변론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비록 재판과정에서는 재판부와 당사자, 피고인의 지위로 만나지만 서로 응답하고 배려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존재의미를 인정하고 정의를 실현하여 가는 관계가 되기를 소망하기에 나온 것일 것입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청년을 보면 내 자식인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왜 그런 범죄에 이르게 되었을까, 가정환경은 어떨까' 궁금하고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 사기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을 보면 내 형제자매인 것처럼 마음이 아파오면서 '그의 처자식들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게 됩니다.
국민들이 법 앞에 섰을 때 혹 차갑게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외로운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열리는 따뜻한 문이 있습니다. 바로 법원 홈페이지 입니다.
법원 홈페이지를 통하여 법원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집에서도 자신에 관련된 사건의 진행정보 확인이 가능하며 법원의 각종 소송절차에 대한 안내와 각 절차에 필요한 서식이 모두 저장되어 있습니다. 또 인천법원 1층에는 종합민원안내센터를 설치함과 동시에 전담직원을 배치하여 민원인들이 법원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필요한 안내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나눠주는 손이 아름답지만 그 손을 따뜻함으로 받아주는 손도 아름답습니다. 법원이 제공하는 각종 정보와 편의의 문을 살며시 열어보면 그 문 안에 많은 배려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느낄 것입니다.
흔히 "법대로 하자"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는 막가는 사이에 하는 말이라고들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법대로 하면 분쟁이 예방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운전을 할 때는 법에 따라 운전하고 거래를 할 때도 법이 정한 방식과 절차를 따라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법에 따라 성실히 일하고 법관과 직원 역시 자신의 일터인 법원에서 법에 따라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서 사법부의 한 일원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법대로 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법대로 생활하고 또 분쟁은 법대로 재판하면서 '나와 너'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법원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 마음에 봄날의 따듯함과 아름다움이 가득 차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조현욱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