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한국 프로축구 K 리그 하우젠 컵 경기가 열린 인천문학경기장. 축구장의 분위기는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5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에 입장한 관중 수는 어림잡아 3천여명. 대부분이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면서 간혹 인천 구단에서 나눠준 프로그램 책자를 펼쳐 출전 선수를 확인하는 열성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뭔가 빠진 게 있었다. 바로 응원이었다. 열기로 가득차야 할 축구장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골대 뒤편에 자리잡은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스 클럽 회원들의 “인천!” 구호만이 쓸쓸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 때, 한 관중이 그 이상한(?) 정적을 깨고 목이 터져라 “인천! 인천!”을 연호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외국인이었다. 인천 유니폼에 구단 로고가 새겨진 스카프로 멋을 낸 이 남자는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영어 교사 브래들리 엘리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지금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영종도 신도시에 집이 있습니다. 좌석버스를 타고 계산동까지 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천 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옵니다. 여기 앉아 ‘인천! 인천!’ 란 구호를 외치고 있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인천 시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축구를 통해 인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도 인천 시민임을 강조하는 엘리스씨의 얼굴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확신처럼 배어 있었다. -이상은 당시 현장에서 엘리스 씨를 취재했던 기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엘리스씨의 이야기는 수수하다. 그러나 듣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자신의 현재적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절절하게 읽어낼 수 있는 언표(言表)이기도 하다. 오늘은 벽안의 서양인조차 ‘인천에 살면 인천인’이라는 글로벌 시대이다. 엘리스 씨의 당당한 이웃으로서 그와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도록 하자. 내 고장 사랑과 정체성, 따지고 보면 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