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란 한글문화협회 인천지부장
이 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자주 들었지만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처음 듣는다고.
 또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라니, 같은 말이 반복되어 전혀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라고
 앞에 나오는 ‘성공’을 ‘성취’라는 말로 바꿔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실패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니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얼마나 격려와 위로가 되는 말이냐. 실제로 참담한 패배의 좌절을 겪은 사람이 이 말을 지팡이 삼아 일어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말을 지나치게 강조할 일은 아니다.
 꽤 오래전의 일인데, 어떤 여상졸업생의 자살사건이 신문에 난 일이 있다. 공부는 잘한 학생이었지만, 키가 작았기 때문에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 여러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었지만 번번이 떨어지자 이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한 것이다. 이 경우와 비슷한 내용인데, 어떤 여자대학 졸업생은 여덟 번째 입사원서를 낸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고 역시 자살을 하고 말았다. 거듭거듭 떨어지자 자학과 자기 멸시의 수렁에 빠졌고 결국에는 자기학대의 종착역인 자살에 까지 이른 것이다.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본인은 물론 부모의 잘못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깊지 않게 땅에 쇠말뚝을 박고 그곳에 체인으로 매어둔다. 어린 코끼리인지라 어설픈 이 말뚝의 제지를 받아 멀리 가지 못한다. 이 일이 반복되면, 상당히 커서도 ‘쨍그랑’하는 체인 소리만 나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말뚝 앞에서 얌전한 강아지처럼 앉아 있게 된다. 코끼리 에게는 ‘쨍그랑’하는 체인이 내는 소리가 ‘불가능’ ‘안돼’하는 메세지가 되었고 또 머리속에 고착되고 만 것이다. 풀어 말하면, 반복된 좌절은 습성이 되어 코끼리를 정신적인 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커다란 통나무도 끌고 가는 코끼리에게 그까짓 어설픈 말뚝이 무슨 문제가 되랴. 하지만 좌절이 몸에 밴 코끼리에게는 그게 아닌 것이다. 이런 원리가 어찌 코끼리라는 동물에게만 한정되랴.
 우리가 바라는 커다란 성공을 높은 곳에 자리잡은 어떤 성전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성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맨 밑의 계단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을 착실히 밟아 올라가야 한다. 성전이 우리가 갈망하는 최후의 성공이라면 계단 하나하나는 작은 성공(성취)이다.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을 이룬다. 큰 성공이든 작은 성공이든 성공을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 이 기쁨과 행복은 또 자긍심과 진취성과 용기를 줌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반대로 실패와 좌절은 우리의 의욕과 용기를 갉아먹고 꺾어버린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중대한 교훈이다.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이여, 대망을 가지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자. 청년들 가운데는 둔재도 있고 평균 이하의 의지 박약아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야망’과 ‘대망’을 강조해도 될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신기루’를 좇다가 자기 멸시의 함정에 빠진 청년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그 보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강조함이 옳지 않을까?
 작은 일을 하나하나 매듭지어 가는데서, 다시 말하면, 작은 일을 성공시켜가는 데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도록 하자. 그래야 큰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