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평양 건축물 가운데 백미라는 인민대학습당과 도심을 관통하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토의 반쪽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조선력사박물관’이 올해로 개관 60주년을 맞았다.
 도로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돼 한반도 고대사를 수백만 년 끌어올린 평남 덕천시 ‘승리산 유적’이나 국사 교과서로만 봐오던 고구려 유적까지 이 곳 유물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꽃이 수 놓인 개량 한복을 입은 안내원 리한옥(48·여)씨는 “1945년 12월1일 문을 연 박물관은 진품 진열을 우선으로 한다”며 “하루에도 수 천명의 관람객이 이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 3층 규모인 이 곳은 입구에 들어서면 하얀 대리석 층계가 관람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입장료는 10유로로 우리 돈 1만 원이 조금 넘는다. 사진 촬영은 유물 1점당 10달러 선으로 제법 비싸다. 간단한 옷가지를 보관하고 전시실에 들어서면 원시유물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원시유물로는 북한이 자랑하는 승리산 유적 중 구석기시대 유물인 ‘덕천사람’의 어금니(齒)와 ‘승리산 사람’ 아래턱뼈 화석이 전시됐다. 또 구석기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형물들도 이채롭다. 더구나 100만 년 한반도에서 사라진 짐승뼈의 진품 유물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선력사박물관’은 곧 수 천년 고조선, 낙랑국, 고구려를 비롯해 발해 역사를 집약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 2층에는 강동군 대박산기슭에 자리잡은 단군릉과 고구려 강서고분 등을 실제 크기로 복원해 그 곳을 직접 찾지 않더라도 찬란한 고대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고조선시대의 팽이그릇이나 황북 린산군에서 출토된 별도끼, 낙랑국에서 만들어진 금동장식품, 범무늬띠고리도 색다르다.
 리한옥씨는 “사학자 사이에 낙랑국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조선을 이어 낙랑국이 세워진 것은 확실하다”며 “박물관에 전시된 낙랑국 유물은 고대 국가의 유물로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
 동북공정론을 들먹이며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의도는 역사박물관 곳곳에 놓인 유물만 보더라도 허황한 이론임이 입증된다. 우리 민족 숨결이 아니라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유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요녕성 인근의 낙랑국, 고구려에 대한 중국측과의 공동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반씩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안내원의 설명은 빼앗긴 강토에 대한 애석함이 묻어 나온다.  고구려 유물로는 세 발 까마귀의 날개, 꼬리, 세 발과 부리, 볏을 맵시 있게 연결시켜 뚫음무늬로 장식한 ‘금동해뚫음무늬장식품’(고구려 4∼5세기)과 ‘금동소나무모양장식’ 등 금동장식품 수 백 점이 안치됐다. 기마민족의 위풍을 엿볼 수 있는 청동, 철제 기마모형 58점은 신라 민중의 삶이 녹아든 ‘토우’(土偶)와 필적할만 하다.
 1천년 세월이 흘렀어도 쪽빛을 그대로 간직한 발해 유물 유약 바른 향로뚜껑이나 1m를 육박하는 치미, 생동감나는 괴면 문양 기와도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이밖에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가 일본 법륜사에 안치된 것을 되찾아 박물관에 기증한 백제시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안정감 넘치는 조형미를 뽐낸다.
 ‘조선력사박물관’은 전체적으로 투박한 질그릇과 같았지만 그 곳에 놓인 유물은 5천년 반도의 북쪽 역사를 소중하게 담아놓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