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 시립인천전문대학 무역과 교수
정부와 여당은 지난 주 8개 첨단업종에 한하여 국내 대기업이 수도권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미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LG 계열사를 비롯한 5개 대기업 계열 부품회사들의 공장 신.증설이 우선 가능하게 되고, 그 결과 LCD산업의 경쟁력 제고로 1조8천억원의 직접투자 효과와 6조5천억원의 생산유발효과, 그리고 3조5천억원의 수출유발효과가 기대된다는 소식이다. 수도권으로서는 10년만에 대기업의 입지와 관련된 규제가 완화된 것으로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의 이면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도권내 공장 신.증설 허용에 따른 난개발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단 내년말까지로만 허용기한을 제한하고,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성장관리지역내 산업단지에 한해서만 허용하며, 대기업들의 신청을 받아 사안별로 허용한다”는 등의 엄격한 단서조항과 함께,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다”는 방침도 재차 확인하고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그 배경으로서 언급된 ‘수도권 입지의 불가피성과 시급성’이라는 경제적 고려는 표면적인 것이고, 최근의 재선거 패배와 임박한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최종평결 등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된 임시방편적인 고육책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된 행정수도법을 대신해 국회가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통과시킨 직후 기존 수도권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수도권에의 공장 신설 규제 해제방안을 제시한 바 있으나, 9월 들어서는 다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행정도시 건설이 완료되는 2012년까지 일체 허락하지 않겠다고 방침을 바꾼 바 있다. 게다가 이번 방침의 발표 자료에는 “이번 조치에 따라 수도권에 관련 공장을 설립할 경우 수도권 신규 인구 유입이 2천~3천명 수준이고, 지방에 있는 공장을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가균형발전에 크게 저해가 되지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져서 이러한 판단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올해 전경련이 시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규제와 제도 미비’ 등으로 투자에 차질을 경험하였으며, 특히 ‘수도권 규제’와 ‘토지 이용 규제’가 전체의 40% 이상으로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 발표된 한국의 시장경제가 출범한 이후 지난 100년간에 걸친 한국 제조업의 지역별 집적과 지역화에 대한 한 연구 결과는 그간 제조업의 입지에서 정부가 개입할 만한 시장의 실패는 없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의 입지 분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고, 인구 이동을 감안할 경우 제조업의 지역별 집중도는 계속 하락하여 최근에는 수도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국 평균에 수렴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제조업이 그간 매우 역동적으로 진입.퇴출하여 왔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 정부 정책에 의하여 특화되더라도 그것이 유지되는 것은 시장기능이라는 것이 계량분석을 통하여 확인되고 있다.
기업의 합리적 입지 선택은 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기업이 기술적 조건, 생산요소 및 생산물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수송비와 혼잡비용 등을 감안하여 이루어진다. 수도권에 입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기업이 판단할 몫이라는 얘기다. 중앙정부가 수송망을 확충하고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여 각 지방이 자율적으로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기업의 입지 선택은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기업의 수도권 입지 규제 완화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서 풀어가는 것이 순리이다. 정부와 여당의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