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는 고대 인류문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렸으며,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중흥기를 연 중왕국 수도로 번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작고 초라한 도시에 불과하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당시 유적은 영화롭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이집트 여행에서 룩소는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대 파라오들의 신전과 유물들이 사막 한가운데 즐비하게 널려 있다. 나일강 동안의 카르낙신전과 서안에 있는 왕가의 계곡, 핫쳅수트장제전 등 이집트 최고의 볼거리가 여기에 다 모여 있다.
 카르낙신전은 규모가 엄청나다. 가로 1.5㎞, 세로 0.8㎞의 터에 거대한 열주와 석상, 제단, 오벨리스크 등을 보노라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신전 입구에는 양 옆으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20개씩 나열돼 있다. 일부는 훼손되기도 했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스핑크스 거리를 지나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한복판에 커다란 원기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람세스3세가 아문신에게 바친 신전이 있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카르낙신전의 하일라이트인 대열주(大列柱)홀로 연결된다. 제19대 왕조 세티1세와 람세스2세가 세운 가로 102m, 세로 53m의 직사각형 홀은 134개 열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특히 중앙부에 있는 12개 대열주는 높이 23m, 둘레 10.6m 크기로 이집트 상형문자와 파피루스 꽃, 아문신을 숭배하는 왕의 치적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당당히 서 있는 오벨리스크도 볼거리다.
 시내 중심지에 있는 룩소신전은 카르낙신전의 부속신전이다. 과거에는 양 신전을 이어주는 3㎞거리에 양 머리 형상의 스핑크스가 나열돼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전 입구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입상과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원래 이곳의 오벨리스크는 좌우 한쌍이었으나, 우측의 것은 1833년 프랑스가 파리의 콩코드광장으로 옮겨 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람세스 2세 등의 석상과 열주가 줄지어 나타난다. 룩소신전은 큰길 옆에 있어서 밖에서 그냥 지나치듯 둘러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입장료가 그리 비싸지 않으므로 꼭 한번 안으로 들어가 감상해 볼 필요가 있다.
 룩소 서안쪽을 가다 보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멤논의 거상이다. 이 석상 뒤에는 원래 아메노피스 3세 신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석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석상의 이름은 원래 아메노피스 3세 신상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시인이 이곳에 머물면서 밤마다 석상에서 멤논의 울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해 이름이 바뀌었다. 멤논은 트로이전쟁에 참가했다 숨진 에티오피아 왕으로, 매일밤 부활해 어머니(에오스 여신)를 만나 슬피 울었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 석상에서 나는 소리는 풍화작용으로 균열이 생긴 돌이 사막의 세찬 바람을 맞아 나는 소리였다.
 왕가의 계곡은 나일강 서쪽 황량한 돌산에 자리잡고 있는 ‘네크로폴리스(죽은자의 도시)’다. 도굴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피라미드 대신 파라오들의 무덤이 줄지어 들어서 있던 곳이다.
 투탕카멘과 람세스3세, 아메노피스 2세, 투투모스 3세 등 지금까지 68개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발견됐다. 발굴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도굴꾼에 의해서다.
 무덤 안은 대부분 비슷하다. 형형색색의 내부벽화와 도굴을 피하기 위해 기하학적으로 입구를 만든 것도 그렇다. 표 한장을 사면 마음에 드는 3개의 무덤을 골라 볼 수 있다. 투탕카멘이나 람세스6세, 투투모스 3세 등의 무덤이 가장 인기 있다. 사진촬영은 일체 금지돼 있다.
 왕가의 계곡 한켠에는 핫쳅수트 신전이 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뒤로 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3천500여년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테라스형의 1층은 22개의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2층에는 핫쳅수트 여왕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대한 대한 기록들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신전은 여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투투모스 3세에 의해 많은 수난을 당했다. 서자였던 투투모스 3세가 핫쳅수트로 부터 모진 박해를 당한 까닭이다. 그래서 기둥 곳곳에 있던 여왕의 업적을 기록한 문자들을 지운 흔적이 남아있다.
 얼마전 오페라 ‘아이다’ 공연이 있었고, 무슬림들에 의한 총기 난사사건으로 관광객 70여명이 사망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집트는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적·유물들에 대한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유물·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어, 유네스코에서 보수·관리를 모두 책임져 준다. 이들은 오로지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부터 비싼 입장료를 챙기는 것만 신경쓰고 있다. 여기서 재미 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지난 1900년대 초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파라오들의 미이라를 카이로박물관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될 때다. 당시에는 룩소에서 카이로까지 육로 수송이 어려워 대부분 나일강에 배를 띄워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카이로 세관에서 미이라의 관세를 매겨야 하는데, 한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품목(?)이라 난감해졌다. 갑론을박이 벌어지다 결국 미이라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 말린 생선 값을 쳐 관세를 매겼다. 그들의 유적·유물에 대한 무지가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백종환기자 blog.itimes.co.kr/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