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우리에게 찬란한 고대문명이 싹튼 곳이자 민주주의와 올림픽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에게해 문명의 꽃을 피웠던 그리스는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다.
 그리스의 매력은 신화속의 나라답게 수많은 고대유적과, 마치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에게해에 있다.
 어린시절 읽었던 ‘일리아스’의 기억이 생생하고, 오딧세이, 비너스, 희랍신화, 올림피아 등도 떠오른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는 유럽대륙의 끝에서 과거 조상들의 화려한 영화만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살아가는 조용한 나라다.
 그리스는 동경심 하나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것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영화롭던 흔적은 낡은 기둥만 남아 허허로움을 더해 준다. 무덤덤한 표정의 사람들과 밋밋한 대지는 여행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리스는 제조업기반이 취약해 무역수지 적자가 해마다 심화되고 있다. 지난 2002년 1월 유로화 도입 이후 물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03년에는 EU(유럽연합) 평균치(1.8%)의 두배에 가까운 3.4%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작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신공항 개항과 지하철 연장개통, 아테네 외곽순환도로 개통에 따른 많은 투자가 이뤄져 경제가 차츰 살아나는 분위기다.
 겨울철 그리스는 비가 자주, 많이 내린다. 섬지역을 운항하는 큰 페리들도 파도가 치고 비가 내리면 꼼짝 없이 발이 묶인다. 사실 그리스 여행의 묘미는 CF에 자주 등장하는 크레타·산토리니·미코노스 등 섬지역 여행이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날씨가 나빠 일정에 포함시켜 놓고도 취소되기 십상이다.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한눈에 보여주는 도시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각종 신전터 등은 고대문명과 신화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아테네의 첫 모습은 실망스럽기조차 하다. 볼품없는 흰색 콘크리트 건물, 무뚝뚝한 사람들, 무질서한 차량과 매연 등은 한순간에 기대를 저버리고 만다.
 아테네에서 가중 중요한 유적지는 파르테논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다. 문명이 열린 높은 언덕(Acro) 위의 도시(Polis)라는 뜻을 가졌다. 아테네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관광 핵심지로, 파르테논신전 외에 니케신전, 헤로데스 아티쿠스극장이 있다. 서쪽 입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파르테논신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제1호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270m쯤 올라가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아테네사람들이 수호여신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위해 지은 것이다. 가로 30m, 세로 70m, 기둥 높이 10.5m 규모로, 실제보다 크게 보이기 위한 시각적 착시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각 기둥은 모두 중간부분이 볼록한 곡선(엔타시스)이며, 신전 중심부에서 1.5마일 상공의 한점을 향하도록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신전 지붕 동쪽 경사면은 제우스의 머리위로 아테나 여신이 탄생하는 장면이, 서쪽에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티카의 소유를 놓고 논쟁하는 모습이 각각 조각돼 있다. 기원전 447년 아테네의 유명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설계했고, 칼리크라테스의 시공으로 9년만에 완공됐다. 기독교 공인 후에는 교회로, 터키 지배하에서는 회교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베네치아군이 파르테논 신전에 진을 친 터키군을 대포로 공격했을 때(1687년) 신전내 화약고가 폭발해 많은 부분이 파손됐다. 지금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언덕에서 내려오면 소크라테스가 처형되기 직전 60일간 감금됐던 감옥도 볼 수 있다. 천연동굴을 감옥으로 사용한 것인데, 당시에는 시설물(철장)이 엉성해 얼마든지 탈출이 가능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머물다 결국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이때 생겨난 것이다.
 1896년 처음 근대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스타디움은 대로옆에 있어 누구나 쉽게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말굽처럼 생겼으며 좌석은 총 5만석이다. 스타디움 오른쪽에는 아베로프의 동상이, 왼쪽에는 마라톤 승전보를 알린 병사의 동상이 각각 설치돼 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산티그마광장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광장주변에는 항공·여행사와 우체국, 환전소, 관광안내소 등 여행에 필요한 시설들이 밀집돼 있다. 아테네 관광을 출발점이라고 보면 된다. 산티그마는 그리스말로 ‘헌법’이란 뜻으로, 1843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장소라는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광장 정면에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바로 앞에는 무명용사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1923년 5세기를 지배해 온 터키에 대항하다 희생된 병사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벽의 부조 오른쪽 맨아래에는 그리스어로 ‘코리아’라고 씌여진 것이 눈에 띈다.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것이다. 비석 양 옆에는 전통의상(에브조네스)을 입은 두 병사가 서 있는데, 매시 30분마다 자리를 바꾸는 모습이 아주 코믹해 여행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코린트
 코린트(Corinth)는 영어발음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이 ‘고린도’라고 불러 우리에게도 그렇게 알려져 있다.
 코린트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이오니아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리온 항구를,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며 에게해로 나갈 수 있는 켄크레아(겡그레) 항구를 각각 끼고 있다. 코린트는 이런 지리적 잇점을 살려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연결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활발한 상업중심지로 발전했다.
 코린트 쇠락은 아테네와 치열한 무역경쟁을 벌이면서 부터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중에는 스파르타와 연합해 아테네와 힘겨운 싸움도 벌였다. 결국 코린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한 탓에 퇴락의 길로 접어든다. 급기야 기원전 146년에는 로마의 루키우스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만다.
 고대 코린트 유적지는 1928년 지진이 일어난 후 재건된 신코린트와 7㎞ 떨어져 있다.
 현재 코린트 유적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 기원전 6세기경 세워진 아폴론신전과 박물관, 고대 극장터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신석기 시대부터 로마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번영 당시(기원전 650년경) 전 세계로 수출됐을 만큼 명성을 떨쳤던 고대 코린트 항아리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왼편으로 걸어가면 여러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보인다. 바로 아폴론(태양신) 신전이다. 이 신전 때문에 코린트는 ‘태양의 도시’라고도 불렸다. 이 신전은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신전이다. 기원전 550∼525년경에 만들어 졌으며, 전체 38개 기둥가운데 일곱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코린트 뒤로는 험악한 바위산이 턱 버티고 있다. 아크로 코린트산이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아프로디테 신전은 히에로 둘리(신성한 매춘부들)가 버글거리던 매음굴이었다는 설도 있다.
 코린트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 장소는 ‘피레네의 샘’이다. 이 샘물은 ‘피레네 아들이 잘못 날아온 원반에 맞아 목숨을 잃는데,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매일 눈물로 지새다 결국 눈물이 몸을 녹여 샘이 생겨났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코린트는 사도바울이 머물며 ‘고린도 서’를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사진=백종환기자 blog.itimes.co.kr/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