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0년은 베트남의 하노이 정도(定都) 1천년이자, 이 나라 최초로 통일 국가를 세운 리(李 Lee) 왕조의 태조 「리 꽁 꾸언」 왕이 즉위한 지 1천년이 되는 해이다. 베트남은 이를 국가적인 행사로 치르기로 하고 리 태조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벌써부터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베트남의 이같은 움직임이 일반인들에게는 얼핏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일로 흥미거리에 불과할 지 모른다. 하지만 유달리 설렘 속에서 행사준비 과정을 지켜보는 인천인들이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협씨(67ㆍ인천 남구 관교동)와 그 종친들.

 황해도 옹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화산 이씨는 종친회원이 202세대에 불과하고 이중 85%가 인천과 경기도에 살고 있는 군소 성씨. 그런 이들이 베트남 일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이들이 바로 리 태조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1009년 건국 후 베트남 문화의 최대 전성기라 평가되는 대월(大越) 문화시대를 여는 등 200여 년 동안 안정된 국가를 꾸려 오던 리 왕조는 1226년 외척 진씨 일족의 반란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이 무렵 진씨 일족의 탄압을 피해 고려에 귀화한 뒤 몽고 침략 때 세운 공으로 화산군에까지 봉해 졌던 리 태조의 8대손 이용상(李龍祥) 왕자가 바로 이들의 중시조인 것이다.

 특히 이 왕자가 피신한 후 베트남 내에서 계속된 「리씨 사냥」으로 왕가가 멸족한 까닭에 화산 이씨가 현재 유일하게 리왕조의 계보를 잇고 있다.

 리 태조의 28대 장손인 이씨와 종친회 간부들은 이 때문에 지난 92년 양국간 국교 정상화로 왕래가 허용되자 이후 매년 베트남을 방문해 이 곳에서 열리는 리 왕조 관련 각종 행사를 주관해 오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도 리 태조 즉위 989년 기념행사에 참석, 행사를 치르고 이달 3일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베트남 방문 이후 이들에게 고민이 생겼다. 당장 내년부터 그동안 딘방 부락행사로 치러져 온 리 태조 즉위 기념식이 국가행사로 그 규모가 확대된다. 하지만 재정 사정 등으로 인해 선뜻 조상의 행사를 주관하겠다고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후손된 도리를 못해 섭섭함은 남지만 리 태조의 유업이라 여기고 베트남이 요청한 우리 학생들의 베트남 유학 및 취업알선 연결 사업 등에 앞으로 심혈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는 이씨는 못내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했다. 〈김홍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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