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 듣는다-박형주 신형 IND(주) 사장
 과거 음악다방의 DJ를 흉내내거나 영어테이프를 카세트에 꼽으며 ‘헤드폰’을 써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핸드폰에서 음악을 듣고, 인터넷으로 영어를 배우는 요즘 헤드폰은 더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헤드폰이 사라졌을까. “아니다”
 20년을 오로지 헤드폰의 개발과 생산에 몰두해 온 박형주(45) 신형IND(주) 사장. 그는 “헤드폰의 성능과 제작기술은 여전히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며, 세계시장은 여전히 겨냥해 볼만한 충분한 경쟁력과 시장성을 지닌 수출분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만 요즘 중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면서 저가품 생산은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산 헤드폰은 전세계 일류기업의 이름을 달고 OEM 방식으로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고 말하는 박사장의 표정에는 지난 20년간 헤드폰 개발과 수출만을 위해 뛰어온 외길인생에 대한 긍지가 녹녹하게 배어나왔다.
 이제는 국내 유일의 고품질 헤드폰의 개발·생산업체로 헤드폰 강국의 명목을 잇고 있는 신형IND.
 신형의 탄생은 한국 헤드폰 산업의 위기에서 출발했다. 지난 1983년 군대를 마치고 들어간 첫 직장이 당시 헤드폰 업계의 최고수로 자리잡았던 소야전자. 박사장은 처음부터 연구·개발분야에 들어가 헤드폰 개발에 매달렸다. 당시 라디오에 연결하는 이어폰과 헤드폰은 모두 박사장이 근무했던 개발팀의 작품들이었다. 10년을 연구개발에 몰두해 온 박사장이 창업을 하게된 것은 지난 1994년. 근무하던 회사가 과다한 영역확장으로 인한 자금난을 극복치못하고 부도난 것이 계기가 됐다. 더욱이 이때에는 중국산 제품들이 대거 국내에 진출하며 내수시장 또한 급격히 위축됐던 시절.
 당시 부도난 소야가 외국업체로 받은 수출오더를 채우지못하게 되자 박사장이 94년 신흥을 창립, 물량을 생산·수출하면서 신형은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당시 수출물량은 30만불어치. 신형의 첫 해 매출이자 수출액인 셈이다. 인천시 효성동에서 남의 공장을 임대해 출범한 신형은 줄곧 재투자를 통해 사세를 확장, 지난 97년 청천동으로 공장을 이전 했다. 2001년 10월 마침내 창립 8년만에 신형은 부평구 청천동 68의 35 현재의 공장을 세웠다. 연건평 5백여평의 자체공장을 확보함으로써 신형은 안정화단계에 돌입했다.
 현재 연매출 3백만불, 대부분의 매출이 미주지역과 유럽지역의 수출에 근거한다. 미주시장에는 코스(KOSS)라는 브랜드로 수출된다. 지난 58년에 출범한 이 회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헤드폰 업체로 현재는 대부분을 신형에서 만든다. 박사장은 이어 지난 해 부터 유럽시장과 일본시장을 노크 마침내 수출길을 열었다. 유럽의 경우 스위스쪽으로부터 조만간 오더가 들어올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코스모(COSMO)라는 브랜드로 OEM방식으로 올 11월부터 수출된다. 수출금액은 약 30만불 어치가 될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소니 등 전문 업체가 많아 수출이 어려웠다”고 밝힌 박사장은 “그러나 이제 신형의 기술력으로 일본 시장을 뚫은 만큼 이제는 일본시장을 무대로 기량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에 수출하는 헤드폰의 경우 현지 시장에서 약 12만원대에 팔릴 정도로 고가제품이 될 전망이다. 신형의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제 신형은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내수시장 진출에 나선 것이다. 마하(MACH)는 국내시장을 겨냥해 준비한 브랜드다. 모든 성능이 미주와 유럽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제품들인만큼 자체 브랜드를 통해 내수시장에서 외국산 헤드폰과 경쟁한다는 것이 박사장의 전략이다.
 박사장은 외국산에 몰입해있는 소비자들에 대해 “국내 기술력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우리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이같은 박사장의 장담은 모두 연구와 개발에 쏟는 노력에 근거하고 있다. 5평 남짓 사장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제도기. 박사장이 수시로 새로운 제품설계를 할 수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일을 잡으면 끝을 보아야하는 그의 성격상 사장실은 늘 불이 켜져있다.
 오늘의 신형을 만들기까지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큰 역할을 했다. 2년 전부터 주 5일제근무를 실시하는 신형은 노조없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임금조정은 사장이 직원들과 상의해 결정한다. 아무런 불만없이 묵묵히 따라준 직원들의 근면성은 오늘의 신형을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것이 박사장의 자랑이다.
 “이력서가 두 장이 넘어가는 직원은 채용치않는다”고 밝힌 박사장의 경영방침은 단순하다. 바로 노사가 한 식구가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이념은 모두가 어렵다했던 IMF 때 그 진가가 나타났다. 수출위주의 경영으로 인해 신형은 오히려 환율변동의 덕을 톡톡히 누렸다. 여기에 불평없이 회사를 위해 일해준 직원들의 노력은 남들이 움추릴 때 신형은 더욱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신형은 매출이나 제품이 더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인천기계공고 출신으로 한번도 인천을 떠나본 적 없는 인천인으로서 박사장이 그려온 궤적은 단 하나. 세계최고의 헤드폰을 만들겠다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이로인해 그가 확보한 특허만도 30여가지. 다양한 헤드폰 관련 기술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모두 박사장과 신형인들이 흘린 땀의 결과였다.
 이제 국내 유일의 헤드폰 수출업체이며, 유일한 헤드폰 개발·생산업체인 신형 IND.
 “헤드폰 공장들이 모두 중국으로 간다해도, 헤드폰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해도 헤드폰 수요는 있으며 그것은 모두 신형의 몫”이라고 말하는 박사장.
 문어발식 외형확장에 익숙한 국내 기업문화에서 오랜만에 전문화를 최고의 가치로 꼽는 한 기업가의 의지를 엿본다.
 <조태현기자> choth@incheontimes.com
 
 사진설명- CEO 신형 아이앤디 박형주 사장
 <안영우기자> anyow@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