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하다 싶던 개헌론이 다시 정가 일각을 비집고 나섰다. 입맛이 가신 식탁에 의례 등장하기 마련인 단골 메뉴라고 애써 외면하기에는 현실정치 상황이 너무 어수선하다.
 엊그제 한나라당서 공개적으로 내각제개헌을 총선공약으로 삼자는 문제의 제기는 때가 때인 만큼 불씨가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뿐만 아니라 야당으로 돌아선 민주당조차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을 들고나섰으니 방법은 달라도 ’대통령의 독주‘를 제동하려는 공감대가 암묵리에 형성되는 기미여서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개헌이 만병통치의 약방문이 아닌 것은 우리 헌정사가 여실히 설명하고 남는 터이다. 영국서 비롯한 내각책임제와 미국을 상징하는 대통령책임제는 각기 다른 정치풍토에서 운영의 묘를 살린 것이니 제 분수 모르고 섣불리 남의 식단만을 넘볼 일은 아니다.
 이렇듯 사례를 드는 까닭은 자유민주정치 하에서는 제도 그 자체의 장단점 이전에 시대적 추이와 다양한 민심을 수용하는 경륜이 우선해야 제도의 진면목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연의 일치일는지 모르나 역사를 통해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제(군주제) 보완차원에서 비롯한 대안이라는 흔적을 의회정치 본산인 영국사에서 엿볼 수 있다.
 ‘명예혁명’(1688)과 ‘권리장전’을 수렴하는 과정은 두고라도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근대적 입헌정치가 성립되는 동안 지극히 야사적 경위가 없지 않았으니 말이다. 즉 17세기의 앤 여왕은 정치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뒤이어 등장한 조지 1세마저 독일 하노바 가문이라 영어를 깨치지 못해 자연 정치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다면 우리 경우는 어떤가. 아시다시피 4.19혁명에 굴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성명을 통해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고 하였던 점을 상기하면 내각제 생성의 특이한 배경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어떤 정치형태이건 간에 통치자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지 못한 국면에서 이를 견제할 권력의 분산을 꾀하는 장치가 통감되기는 고금동서를 막론한 바램이며 내각제도 그 하나다.
 내각(內閣)의 어원은 일찍이 元나라 황제가 中書省이란 별정기구를 두어 몸소 일인 전횡을 막고 권력의 분산을 꾀하고자 “闕內에 있는 政閣”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 효시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참여의 기조 아래 개혁의지를 불태웠으나 과도적 혼란은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한 채 급기야 뿌리 뽑힌 ‘무당적 대통령’이라는 이율배반에 직면하고 있다. 신당에 옮기자니 ‘철새 대통령’이라는 빈축이 나설 법하고 속내는 신당을 지지하면서도 총선까지 관망하려하니 그의 지지세력조차 불안정한 리더십에 회의를 느끼는 판국이다.
 참으로 이러하지도 저러하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 한다면 앞서 지적한대로 그 점이 내각제나 분권형 개헌을 자초하는 요인과 마주칠 것이 분명하다.
 ‘무당적 사태’를 보다못해 고건 총리가 팔을 걷고 나섰지만 과연 정책조율에 임하는 그에 얼마나 힘을 실어 줄 것인가 미심쩍기에 날이 갈수록 분권론의 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인연을 접어두고 무당적을 유지코자 한다면 차제에 대화 코드의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 곧 권력의 분산을 중화하고 사세를 원활히 이끄는데 도움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으뜸 가는 파워를 지녔으나 그 나라 의회는 대통령보다 강한 정치적 발언권을 간직했기에 양자간에 힘의 밸런스가 유지됨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함이다.
 항용 노 대통령은 스스로 피해자라 했지만 오히려 부여 된 막강한 권력을 하찮은 대중영합에 소모하지 않고 의연히 대응할 냉철한 판단력을 재정립한다면 길은 탄탄히 트일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아무리 내각제가 금과옥조라 한들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