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옥자 경기도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장
 얼마 전 프랑스를 다녀 온 한 친구는 여행하는 동안 참 힘들었다는 불평을 했다. 그 이유는 각종 안내문은 물론 지도, 거리 표지판 모두가 불어로 되어 있고 또 길을 물어도 불어로 답을 해줘 큰 애를 먹었다고 한다. 불어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친구는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특히 관광이 중요한 산업인 나라에서 불어만 사용하는 것은 너무 오만한게 아닌가 하며 불평을 했지만 작금의 우리 현실과 비교를 할 때 그들이 훨씬 부러웠다.
 70이 훨씬 넘으신 내 고모는 요즈음 영어 공부를 하신다. 그 이유는 사는게 불편해서라고 한다. 물건을 살 수도, 어디 찾아 갈 수도, 심지어는 텔레비젼을 보는데도 불편하기 때문에 하루 한자를 외워도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한번은 옷 한벌을 선물로 받았는데 맘에 안 들어 바꾸러 매장을 찾는데 도저히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매장 이름이 영어로 쓰여 있어 앞에 두고도 찾을 수 없어 묻고 또 물어 매장에 들어서며 불쾌감을 넘어 자신의 까막 눈(?)을 원망하셨다고 한다. 요즈음 아들 아파트 이름도 모른다고 한다. 아파트 이름이 모두 영어인지라 기억할 수도 없어 어쩌다 아들집에 가려면 종이에 이름 적어 들고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택시를 타도 어디로 가자고 말 할 수 없으니..., 특히 종일 소일거리가 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글로, 자막도 프로그램도 진행이 되어, 영어 모르고는 2등 시민이 될 수 밖에 없어 늦었지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긴 70대 노인의 한탄은 그럴 수 있다지만 40대인 나도 어쩌다 텔레비젼을 보면 지금 내가 어느 나라에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오는 가수들마다, 그룹들마다 외국 이름 일색이고 부르는 노래 가사마다 영어 한마디씩 들어가고 초대 손님 불러 놓고 나누는 대화마당 이름도 모두 영어 이름이고 나누는 이야기도 영어 일색이다. 또 유아 프로그램까지도 영어가 이민을 와 있는 실정이고 보면 그 심각성은 극에 달 한 듯하다. 매스컴만 탓할 일도 아니다. 지도자급이란 사람들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반이 영어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이유는 뭘까?
 지난 주 신문에는 청와대에서 영어로 명명된 조직 명칭을 한글로 바꾼다는 내용이 실렸다. 청와대의 부서 명칭을 영어로 사용한 것에 대해 한글 운동을 벌이는 한 단체에서 지적해 와 대통령 비서실에서는 그 지적을 받아들여 영어 부서명을 변경하고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안되는 말은 우리말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서둘러야 할 일인 듯하다. 한글 오염이 심각하고 특히 우리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 부처명만이라도 우선 우리글화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제화, 세계화의 흐름을 저항하자는 것도 아니라 국수주의자가 되어 쇄국 정책을 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해 국제적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를 잘 살게하겠다는데 마다할 사람 없다. 다만 때와 장소가 필요한 거다. 한 회의에서 만난 북측 한 여성은 볼팬 한자루 선물로 전하니 거기 쓰여진 상표를 보고 미국 제품인지 묻고 남측의 영어 사용을 지적해 구차한 변명을 한 기억이 있다. 국제화, 세계화가 영어 몇마디 한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민족적 주체성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또 말과 글이란 이 땅에 사는 모든 민초들이 자유롭게 나누고 의사 표현을 할 수단이어야 하는데 이미 말과 글을 통해 세대간 벽이 생기고 있다면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닌가?
 며칠 전 해외 민주화 인사들이 고국 방문을 하면서 기자들과의 대화를 들으며 참 놀라웠다. 십 수년 간, 길게는 40여 년 동안 외국에서 그 나라 말을 쓰고 살았을 텐데 지금도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발음도 정확하고 사용하는 단어의 격도 그렇고 전혀 더듬거리지 않고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하게 했다. 반면 모 야구 선수가 2년만에 돌아 올 때 혀 꼬부러진 말로 더듬거리며 기자 회견하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