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부시대통령의 인기가 워낙 높은 데다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던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이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하여 민주당의 승산은 낮아보였다. 민주당에선 여러 명의 고만고만한 후보가 난립하여 경쟁을 시작했는데 전 버몬트 주지사인 하워드 딘이 선두로 치고 나왔다. 9.11사건 이후로 여론의 애국주의적 태도가 강화되어 야당인 민주당의원들은 부시의 이라크 전 수행에 내놓고 반대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하워드 딘은 과감하게 반전을 기치로 내세우고 부시를 공격하여 인기를 모았다. 인터넷을 통해 지지자들을 모으고 당 지도부나 의원들 보다는 풀뿌리 열성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점에서 그는 노무현 후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나 민주당 지지성향의 식자층의 고민에 빠졌다. 하워드 딘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많지만 성향이 너무 진보적이어서 무소속이나 온건한 공화당 표를 끌어 모으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본선 경쟁력이 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서 그 동안 좌고우면하던 웨슬리 클락 전 나토사령관이 지난 17일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클락은 미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가 공인 수재라고 할 수 있는 로즈 스칼라 자격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으며, 베트남 전에서 총상을 입고 훈장도 탔고, 나토사령관으로서 코소보 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화려한 이력서를 갖추고 있다. 9.11.의 충격이 워낙 커서 그 동안 부시의 안보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클락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 입장을 취해 전통 민주당원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한편 군 경력으로 인해 애국심에 대한 시비를 받지 않고 부시의 일방주의적 정책을 비판할 수도 있다. 미국에도 지역주의가 다소나마 존재하므로 남부출신인 그는 보수적인 남부사람들의 표를 모을 수 있다는 기대도 받고 있다. 거기에다 외모가 뛰어나 미디어 선거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클락은 퇴역 후 CNN에서 군사평론가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실 일반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경선 참여 선언 직후 실시된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중 지지도 1위를 기록하였고, 부시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도47:43으로 근접한 결과가 나왔다. 그가 완전한 정치신인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민주당 후보의 본선경쟁력을 걱정하던 사람들이 고무되기도 했으나 악재도 뒤 따랐다. 그는 기자들과 이야기 하던 중 이라크전 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도 (의원이었다면) 아마 찬성투표를 했을 것이다”라고 말해 지지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정책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는 식의 모호한 대답을 하였다. 그 다음날 바로 오해가 있었다며 이라크 전 찬성 발언을 뒤집었지만 그가 정말 민주당 지지자들이 기댈 수 있는 능력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다. 부시의 낙승이 예상되던 미국의 내년 대선은 느린 경기회복과 이라크의 혼란으로 인해 부시의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하고 클락이라는 변수가 돌출하여 결과를 예상을 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라크와 국내경기가 중요하지만 클락이 실제로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역량을 갖추고 험로를 헤쳐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형편도 어려운데 한가하게 남의 나라 대통령선거 이야기를 하기가 뭐하지만 미국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년간 벌어지고 있는 핵을 비롯한 남북문제의 어려움도 우리보다는 부시정부의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부시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미국경제의 침체도 한국을 비롯한 대미 수출국에게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근래에 기상이변이 잦은데 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을 든다. 하지만 세계에서 화석연료를 제일 많이 쓰는 미국이 교토의정서 이행을 거부하여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우리는 전투병 파병요청을 받고 있어 한바탕 홍역을 겪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국익의 이름 하에 희생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다. 미국의 대선을 그야말로 우리와 무관한 남의 나라 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