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훈 인천발전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최근 추상적으로 들리는 ‘동북아 중심 건설’ 대신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8·15경축사 주요 메시지도 ‘국민 소득 2만불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2만불 시대’는 원래 일부 기업인들과 언론이 거론하던 구호였다. 전후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1995년 국민소득 1만불에 도달하였으나 외환위기의 우여곡절을 겪고 작년에 다시 1만불을 겨우 넘어섰다. 우리보다 앞서 2만불 시대를 맞은 국가들은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데 10년 가량 걸렸는데 우리는 1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제 신발 끈을 묶고 다시 뛰어야 한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빨리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필자도 간절하지만 앞으로 언론에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2만불’ 소리를 들어야 하니 먼저 몇 가지 오해는 풀어주고 싶다.
 ‘동북아 중심’전략은 구호가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국가생존전략이자 경제성장전략이라는 점에서 ‘2만불 시대’와 같고, 실행방안 측면에서는 더 구체적이다. 사실 피부에 와 닿기는 하지만 ‘2만불시대를 앞당기자’는 구호는 ‘경제성장을 빨리 하자’라는 막연한 구호로 대치해도 내용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국민소득 2만불은 부정확한 표현이며,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이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오용은 편의상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명목달러표시 1인당 국민소득이 물가와 환율 변화 때문에 우리의 실제 소득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년 1인당 명목국민소득 10,013불은 1995년보다 몇 백불 낮지만, 물가 상승도 고려하여야하고 절대다수의 국민은 원화로 원화표시 물건을 사고 팔며 살기 때문에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은 원화표시 실질국민소득이다. 작년 1인당 실질국민소득은 1995년에 비해 15%정도 올랐으니(명목소득은 50%증가) 제자리걸음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10년간 1인당 실질소득은 52%가량 상승했다. 1995년은 환율이 정부의 규제와 개입으로 인해 원화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던 시기였다. 명목달러기준으로 지금에야 비로소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넘어섰다고 보아도 된다.
 달러표시 국민소득은 국가간 물가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1인당 소득의 실질적인 척도로 적합하지 않다.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 적정환율이라 할지라도 교역재간의 교환비율을 나타낼 뿐이다. 구매력을 감안한 우리의 현 국민소득은 대략 만오천불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잠시 부푼 가슴을 진정시킬 필요도 있다.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넘은 시기는 대체로 1980년 전후인데, 달러 발행국인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일어나기 때문에 그때의 1만불은 지금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넘은 1978년의 48센트는 지금 1불10센트 정도의 가치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10년 후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다면 그 때의 2만불은 실질가치면에서 과거 선진국의 2만불보다 낮은 수준일 것이다.
 요점은 명목달러소득은 구호나 비전으로서 의미가 있겠지만 과도한 의미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질원화소득이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싶으면 구매력평가지수가 반영된 소득이 더 의미 있는 지표이다. 어차피 ‘2만불 시대’는 경제성장이라는 국정과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구호이고 중요한 것은 달성방법이다. 경제성장이 국정과제이어야만 하느냐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경기침체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성장을 위해 다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한다는 과거의 개발독재식이 아니라면 국정과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아야한다. 다만 구호가 너무 앞서 가거나,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혹시라도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까지 나서지 않았으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