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상대와 마주치면 제 몫 챙기려 밀어내기 서슴없다가도 혼자 남아 살기엔 외로워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집단생태의 특성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기적 배타심이 강한 한편으로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애써 우호관계를 모색하는 이중잣대는 삶의 방황심리를 아우르는 공생본능이다.
 문득 어렵던 예전 그 시절, 파리 여러 마리가 초겨울 냉기에 활동을 멈추고 천장구석에 비며 모이던 일이 생각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는 일종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리라.
 비단 미물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간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기에 일러서 ‘고슴도치 딜레마’(porcupine dilemma)라는 비유가 등장하는 까닭이다.
 얼어붙은 겨울 아침나절 고슴도치 몇 마리가 떨리는 몸뚱이를 녹이려 서로 엉키다 굵은 가시 털에 찔려 밀려난다. 그러다 아픔을 참아가며 접근하기를 되풀다 급기야 터득한 지혜는 피 흘리지 않고 서로 온기를 최대한 공유할 수 있는 적정거리의 확보였다는 요지다.
 쇼펜하우어의 우화에 담긴 문제의 제기는 만남과 헤어짐을 되푸는 인간의 얕은 심성을 꼬집는 사랑과 미움의 어쩔 수 없는 양면성을 일컬음이다. 겉과 속이 뒤바뀌는 애증(愛憎)의 반복은 곧 고달픈 인생행로를 가늠할 이중잣대로서의 반성자료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세상살이 말 많고 탈도 많다지만 요즘은 가슴 답답한 사사건건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목을 들쑤셔 적응은 고사하고 체념할 틈새 없이 짜증나고 살맛 나지 않는다.
 사회현상의 단면지수로서 최근 자살건수가 1998년 외환위기 때 보다 늘어났고 개인파산 또한 4배라는 보도는 이유야 여하튼 눈 밖으로 밀려난 소외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물론 안팎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어느 한 사람 힘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과거와는 차별된 개혁의지만이라도 이어 살아 꿈틀해야 할 터인데도 나라 일이 매양 조령모개(朝令暮改)요 초록은 동색이라는 작금의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돈 남 말하듯 서로 탓하기에 긴 여름날을 무위하게 보냄은 누워 침 뱉기와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앞장서 노사, 교육문화의 틀을 정상에 올리기에 老·壯·靑의 충정을 두루 추스리려 포용할 공생공존의 길을 트는 것이 우선과제다.
 아무리 제 주장이 옳다 치더라도 남의 입장을 수용 못하는 좁은 궁량으로 합의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조바심은 나무에서 고기를 낚는 어리석음과 같다. 창은 열려야 바람이 든다.
 고슴도치의 고육지계가 시사하듯 일을 성취하려면 시행착오의 요인을 먼저 가려 찾아 반성하고 보완하는 것만이 최소한의 희생으로서 대국적 현안을 수습하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비록 상대의 그것이 가시 털을 방불케 할 망정 거부반응을 거두고 남의 의견과 개성을 존중할 아량과 인내 어린 작업이 중단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신이 펴는 주장에 걸림돌 세력을 규탄하는 소리는 도처에 벌집 쑤시듯 일면서도 가시 찔리는 아픔을 참아가며 대화의 거리를 좁혀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남북한의 첨예화한 대립관계를 조정하는 비무장 완충지대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대안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의사소통의 적정거리가 매우 긴요하다는 또 하나의 보기다.
 무릇 부드러운 인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고슴도치도 상대를 모질다 타박하지 않고 서로의 입지를 존중했기에 그나마 온기를 누릴 수 있는 터에 하물며 인간관계에 있어서야.
 속담에 이르기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남 탓하는 흠은 덮어놓고 정작 자신의 가시 돋친 언행을 새털 깃처럼 ‘함함하다’ 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착각이요 악성 딜레마 증후를 의심해 볼만하다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