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와 다자간 對 양자간 회담 공방
김정용 정치학 박사/인하대 강사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초미의 관심사는 북핵문제였다.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따오 중국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북핵문제에 대한 회담형식을 ‘다자간’ 아니면 ‘양자간’ 으로 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한 이견을 결국 좁히지 못했다.
 이 쟁점에 대해, 중국은 북한의 주장대로 양자간의 회담형식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든든한 후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이 아무리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고, 세습체제를 비난하며, 더딘 경제개혁을 못마땅해 하더라도 북한체제의 붕괴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은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즉 한반도가 분단된 채 한국과 북한이 공존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중국의 외교력을 최대한 보장 받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과 북한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질적 대화의 창구를 갖고 있는 나라는 지금 중국뿐이다. 둘째, 급작스런 북한의 붕괴는 북한난민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북한의 붕괴는 중국이 많게는 수백만의 북한난민을 수용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선 북한의 생존은 그들의 정치적 입지적인 면에서 중요하다. 즉 중국 지도부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공산당 독재형식이다. 북한은 도덕적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다자간 협상을 지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완강히 다자간 협상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은 북핵 대화가 시급하기에 초강대국인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대화성사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한국정부는 미-북간의 양자협상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즉 미국과 북한간의 포괄적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포기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및 관계개선이라는 카드를 맞바꿈으로서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다자간 협상을 원하고 있을까? 첫째, 1994년 북핵위기 때, 미국은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인해 북핵협상에서 끌려다녔던 점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양자간 협상이 지지부진하여 내년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 내년으로 예정된 미 대통령선거에서 부시측은 큰 부담을 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자간협상인 경우에는 실패할 경우에도 미국측의 책임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한국, 일본은 물론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마저 북한의 핵개발 및 보유는 절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반대하는 이유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외에 다른 약소국가가 핵을 보유하는 경우 강대국의 핵 억지력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며, 더구나 북한이 핵을 갖게 되는 경우는 한국은 물론, 일본이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핵무장은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핵 역학관계를 간파하고 있는 미국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이해 당사자 국가들이 전부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지 않기에, 다자간회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셋째, 다자간협상은 많은 이해 당사국들이 참여하여 북한문제에 관한 합의를 보기 때문에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북한의 핵위기 조장의 재발을 막기쉽고, 어길 경우에는 그에 따르는 북한제재에 대한 국제적 협력이 훨씬 더 용이하다고 보고 있기 대문이다. 넷째, 가장 섬짓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대화를 하려는 마음보다는 경제적 제재 및 나아가 무력사용을 염두에 두고 명분 쌓기차원에서 다자간회담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다자간의 회담은 아무래도 조율하기가 어렵고, 회담 자체가 토론의 장으로 전락하기 쉽다. 즉 미국은 그저 다자간 북핵협상에서 할 도리를 다했다는 명분을 쌓고 원래의 목적인 북한압박으로 가기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
 지금의 북핵문제는 회담형식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에서부터 이해 당사국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북핵문제가 부딫칠 암초들은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그리고 언제 그 암초들에 의해 좌초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해 당사국들의 수읽기와 셈법은 복잡하고 뒤엉켜져 있다. 그러한 가운데 한반도는 2003년의 후반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