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하루에도 몇차례씩 밀었다가 빠져나가는 바닷물의 힘을 이용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원리를 응용한 것이 조수 물방아였다. 바닷물이 깊숙이 파고 드는 만안에 둑을 쌓고 바닷물을 조절하는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둑에는 자동식의 갑문을 설치 바닷물이 밀려들어 저수지를 채우면 자연히 갑문이 닫히고 물이 썰면 갑문이 열리도록 했다. 이때 바닷물은 수문을 통과하면서 수차를 돌아가게 했다.

 기록상으로 최초의 조력제분소가 등장한 것은 1135년 영국에서였다. 곧이어 네덜란드에도 나타났다. 그리고는 급기야 대영제국의 해안을 따라 그리고 유럽대륙의 서해안-북으로는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의 남단에 이르기까지 또한 신대륙 아메리카의 동해안 곳곳에 조력제분소가 세워졌다.

 인간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루에 두번씩 벌어지는 거대한 바닷물의 이동에 전문가들이 눈독을 들였다. 밀가루를 빻는 것보다 더 큰 이용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오랜 후 조력발전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그 첫 주인공은 프랑스인 기사 로베르 지브라로 1940년대초 브르타뉴의 생말로에서 조력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20년간 조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61년 랑스강을 가로질러 800m의 댐을 쌓는 난공사에 들어갔다. 1억7천5백만달러의 공비가 투입된 5년간의 공사 끝에 1966년 11월 마침내 발전소가 가동되었다. 이곳이 유명한 랑스 발전소이며 1만㎾ 용량의 발전기 24대가 가동되고 있는데 한대의 터빈에서 1만5천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그후 옛소련의 백해에 조수발전이 시설되었고 캐나다와 미국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도 인천과 충남의 천수만 가로림만 등이 가능지역으로 꼽히는데 또다시 조력발전소 건설등 시화호의 다목적이용이 거론되고 있다. 이곳 수역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7.9m여서 조력발전에 유리하며 이미 방조제도 건설되어 있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아 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활용할 방도를 강구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