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의 숙명적인 관계 탓이겠지만 일본 글자에는 그들이 만들어낸 한자가 많다. 이를 국자(國字)라 하는데 우리에게도 우리식의 국자가 더러 있다. 사람이나 땅이름을 적을 때 적당한 한자가 없어 만들어낸 글자이다. 예를 들어 乭 乶 핗 등인데 여기에서의 乙(을)은 ㄹ받침 구실을 한다. 즉 『돌石』 밑에 乙을 받쳤으니 『돌』이요 『클보甫』 밑에 乙을 더했으니 『볼』이 되었다. 강화군의 보름도는 그래서 한자로 乶音島라 적는다.

 보름도는 강화군의 서쪽 섬이라 해서 서도면에 속한다. 강화본도는 다리를 놓아 섬의 신세를 면한지 오래이나 아직도 서도면의 섬들은 섬중의 섬이다. 그런만큼 교통의 불편도 그에 따른 외로움도 크다. 섬이름 조차 그런 연유로 지어졌다고 한다. 즉 예전 뭍에서 가고 오는데 보름이나 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옆의 섬인 아차도는 어쩌다 머물고 보니 절해고도에 매인 신세라 『아차』하며 한탄했다는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피해 이곳에 기착 보름동안 머물다 둥근달을 보았다고 하여 망월도라 했다가 보름도가 되었다고도 한다. 서해 섬들에는 대개 임장군과 얽힌 전설들이 있으며 이곳에도 역시 임장군을 모신 당집이 있었고 그곳을 지금도 『당아래』라 부른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 연근해는 새우잡이 어장이었다. 수심이 얕은데다 예성 임진 한강의 3대강물이 흘러 비교적 염분이 적어 새우의 회유에 적당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잡힌 새우는 즉시 소금에 절여 시선배에 실려 마포로 갔었다. 그때 뱃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김순제교수에 의해 재현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성했던 어업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바다가 오염된데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어장형성이 어렵다. 주민들도 많이 육지로 떠났다. 한때 낙도개발 지원이 있었다지만 그정도로 도서민의 발걸음을 잡을 수 없었다. 여기에다 선편은 있어도 외지인들의 왕래가 불편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출입통제의 완화를 원한다. 불편이 그대로라면 심정적으로도 여전히 보름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