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
기억교실, 유네스코 등재 준비

이태원 참사 등 불감증 여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 영통노란리본공작소에서 만든 세월호 리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아직 아물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1000일이 되던 해인 2016년부터 노란 리본을 만든 영통노란리본공작소는 올해도 노란 리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광명시에서 마카롱 전문점을 운영해 온 김소희씨는 4년째 '잊지마롱'이라는 마카롱을 만들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해왔다. 김씨가 만든 마카롱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수원 4·16연대도 2년전부터 매년 4월 '진실의 연'을 날리며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고 사고 원인 규명을 외쳤다. 단원고 학생들의 10년전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4·16기억교실에는 매년 수많은 추모객들이 교실을 다녀가고 있다. 4·16기억교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준비 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소상공인들도 자신의 피해보다 학생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던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은 미뤄지고 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서울 이태원, 청주 오송 지하차도 등 안전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를 '이제 그만하자'는 목소리에도 '그만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만난 안산시민 김용채(80)씨는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했을때는 첫째도 둘째도 국가 최고 책임자가 나서 지휘해야한다. 그랬더라면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어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기억식에서 만난 세월호 희생자 곽수인의 어머니이자 극단 노란리본 배우 김명임씨도 “벌써 10주기가 됐지만 어떠한 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란 생각”이라며 “앞으로 이런 참사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끝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16재단 김광준 이사장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잊혀지지 마련이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도 있다”며 “세월호 참사도 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생명존중과 안전 사회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과 다짐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원근·박혜림 기자 lwg1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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