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br>
▲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공동대표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선거를 치렀는데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을 피웠는가? 오늘의 현실을 돌아볼 때 결코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최초의 보통선거로 인정되는 1948년의 5·10 총선거는 안타깝게도 분단을 기정사실로 하는 선거로써 김규식과 김구 등 민족지도자들이 불참하는 가운데 실시되었다. 통일된 독립 국가가 돼야 한다며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제주도는 선거에서 제외됐다.

5·10 총선거는 미국의 비호 아래 이승만을 중심으로 반공 체제가 구축된 후에 이루어진 선거로서 통일국가 수립은 선택지에서 아예 배제됐다.

미군정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치 질서를 신속하게 세워나가던 우리 민족의 노력을 좌절시키고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을 요직에 기용하면서 자국의 이익에 맞추어 한반도 정치 지형을 구축했다.

미국을 등에 업고 또다시 통치 세력이 된 일제 부역자, 친일 반역자들은 자신들이 차지한 권력을 유지하려다 보니 민의를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거짓을 유포하면서 갈라치기도 자행했다. 정적에 대하여 빨갱이라는 낙인 또한 서슴없이 찍어댔다. 그렇게 왜곡된 정치 지형은 선거판도 더럽혔다.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유력 야당 후보가 등록 서류를 빼앗겨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도 그 피해자다. 그 후에도 대리투표와 개표 부정을 포함한 온갖 부정 선거가 이어지다가 결국 4·19 항쟁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더 교묘하게 국가 권력이 선거에 개입했는데, 중앙정보부가 그 핵심 역할을 했다. 금품 살포에 필요한 막대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카린 등의 밀수도 서슴지 않았다. 1967년 6월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리투표, 공개투표, 표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이 저질러지자, 전국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간의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부정선거는 많이 개선됐지만 기형적인 정치 지형이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미국에 대한 굴종이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압박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물밑에서 일어나지만 매우 드물게 물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2008년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당시 주한 미 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 2019년 당시 주한 미국 대사 해리 해리스는 이혜훈 당시 국회의원을 자기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내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친미·친일적인 행태가 노골화된 시기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와 자주를 함께 쟁취하는 길에서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다행히 분위기는 과거보다 희망적이다. 많은 유권자가 거짓된 사실에 부화뇌동하는 대신 주관을 갖고 투표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분열보다는 단합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갈라치기 공작도 별 효력이 없어 보인다. 한동안 파괴력을 발휘했던 빨갱이 몰이나 북풍 몰이도 맥을 못 춘다.

이번 선거가, 깨끗한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새 판을 짜고 외세의 그림자도 쓸어버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