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기본권, ‘속헹씨 사망’ 전·후로 나눠져

"국회가 만든 고용허가제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 /사진=본인제공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포함한 기본권 개선은 속헹씨 사망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국회가 만든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제대로 변화할 수 있다.”

7일 인천일보가 만난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 처우 현주소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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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며 이주노동자, 특히 이주여성들이 겪는 아픔과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본인이다. 지난해에는 그들의 슬픈 현실을 담은 책인 ‘얼어붙은 속헹’을 내기도 했다. 그런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이 활발해진 기점을 2020년 12월 속헹씨 사망 사건으로 정의했다.

김 목사는 “속헹씨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들과 단체, 인권단체들이 연대해서 강력하게 주거권 운동을 펼쳐나갔다”며 “이로 인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벌어지고, 정부에서도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1월1일부터 농·어업 분야에서 신고하지 않은 불법 가설 건축물을 외국인 근로자의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이미 불법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희망한다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도록 했다. 같은 해 7월1일부터는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김 목사는 “경기도에서는 현재 안성 등 5개 시군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공공 기숙사 건립 사업을 하고 있다”며 “30~50명 정도가 들어갈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2020년 12월까지 캄보디아 외국인 노동자 고(故) 속헹(31·여)씨가 거주했던 열악한 환경의 비닐하우스. 속헹씨의 비극 3년여 만에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경기도 공공기숙사'의 전경. 경기도와 파주시·연천군이 각각 예산을 들였다. /사진제공=포천이주노동자센터, 경기도

그러나 그는 이런 변화는 시동이 걸렸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새 기준은 마련됐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김 목사는 “노동부 지침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다 보니 많은 사업주가 편법과 불법으로 여전히 불법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고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또 노동부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해주는 것도 엄격하게 시행하지 않고 있어 이런 사례가 일반화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앞서 2022년 12월 포천 한 복지회관 반경 2㎞내 농장 13곳이 이주노동자에게 불법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고, 지난해 3월 포천 한 돼지농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주노동자가 축사를 개조한 열악한 환경에서 10여년 주거하던 것으로 알려져 모두의 안타까움을 샀다.

또 김 목사는 지난해 입국한 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에 가보니 빌라로 제공한다던 기숙사가 컨테이너로 돼 있어 고용노동부에 사진 제출과 함께 사업자 변경을 신청했지만 불법건축물 입증 자료를 다 떼와야 한다며 집행해주지 않았다는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김 목사는 “우리나라가 초저출산·고령사회로 진입해 이주노동자를 대거 데려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런데 데려오는 것에만 몰두하지 이들을 위한 노동 조건과 환경을 개선할 생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문제를 짚었다. 하나는 노동부가 지난해 9월부터 적용한 ‘심각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해 신규 입국하는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는 일정한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는 제도를 들었다. 이는 인간의 주거권·기본권을 침해하고 이들을 지역 소멸 해결 수단으로 삼겠다는 ‘개악안’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 부작용으로 미등록자, 즉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사유·이력 등에 대한 정보 제공 강화’다. 고된 노동에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간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모든 정보를 구인 사업주에게 제공하게 되면 ‘블랙리스트’가 생성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3개월 내 구직하지 못해 미등록자로까지 만들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지난해 3월 포천시 한 돼지 농장에서 숨진 태국인 A씨(60)가 발견된 축사 전경(아래),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주방(왼쪽)과 A씨가 잠자던 방안 모습. 축사 창고를 개조해 만든 숙소가 악취와 배설물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이광덕 기자 kdlee@incheonilbo.com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 주거권, 더 나아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것으로 ‘고용허가제’ 변경을 꼽았다. 현행법상 비자 연장과 재입국 비자 발급 시 오직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사업장 변경 시에도 사업주 동의가 필요해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에서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국회가 20년 전 ‘외국인고용법’을 제정해 탄생시킨 ‘고용허가제’를 이제는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지만,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내국인 노동자들처럼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자유롭게 근로계약을 맺고 해지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또 기숙사를 마련할 때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재정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며 “개선된 근로조건과 환경을 보고 한국에 매력을 느낀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유입될 수 있고, 경제 건강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해림 기자 su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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