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57년 냉전 시대에 구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우주 공간에 띄우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격앙된 국민들을 달래며 아이젠하워는 직속국가자문회의를 구성해서 소련을 따라잡을 계획을 세운다. 그 산물이 NASA이다. 그리고 조용히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을 개발할 또 하나의 기관을 창설한다.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이라 부르는 이 기관에는 당대의 과학계, 산업계 인물들이 속속 모인다. 위성, 스텔스 같은 국방 기술뿐 아니라 개인 컴퓨터, GPS, 드론의 핵심 기술들이 이 DARPA에서 탄생한다. 이들의 전산 정보망 '아르파넷'은 인터넷의 출발점이 되었고, 코로나 백신,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같이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최첨단 기술들은 이미 수 십년 전 여기서 출발하였다. 과학자들은 DARPA가 현대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 말 인류는 자신의 유전자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을 만드는 작업은 아폴로 계획과 맞먹는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 어느 나라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87년, 임기를 1년 남긴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국립보건원과 에너지자원부에 예산을 배정하고 양 원에 협조를 구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그 결과는 12년 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그 덕에 21세기 생명과학과 의학은 그 흐름이 바뀌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정밀의학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다. 개인의 유전체, 의료 기록, 생활 습관 등을 모아 질병을 예방하고 개인에 맞는 치료를 하는 세상을 여는데 국가의 역량을 쏟겠다는 것이다. 다음 해에는 달 착륙 계획에 비견되는 암 정복을 위한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책임자로 당시 부통령 바이든을 지명했다. 6년 후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캔서 문샷 2.0'을 발표한다. 존스 홉킨스의 암센터장을 수장으로 하고 보건부, 백악관 정책위원회, NIH, FDA의 장들을 붙여주어 '암 내각'을 만들고, 이들이 관련된 모든 사항을 결정하도록 전권을 주었다.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가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 이니셔티브는 지금 암 예방, 정밀의학, 표적치료 같은 전 세계의 최첨단 연구를 이끌고 있다.

우리 대통령도 과학에 대해 무언가 한다. 22년 누리호 발사 성공 후 우주항공청 설립을 최대 과학 치적으로 잡았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그 첫 단계로 청사는 사천에 임시로 짓고 '공무원 최고 연봉', '임기 보장', '임대 아파트'를 내세워 나사의 한국계 임원과 퇴직자 중에서 청장을 물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와 시민 운동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작년에는 미국 순방 때 DARPA까지 견학하고 오더니 곧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과학계 카르텔을 분쇄하고 낮은 효율을 개선하면 과학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믿은 듯하다. 대신 과학으로는 진로가 불투명해진 입시생들과 갈 곳 잃은 이공계 인재들을 위해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려주었다. 생산 인구는 반 토막 나지만 노령 인구가 늘어나고 산청의료원 같은 곳에 사람이 없으니 준재들을 그리로 밀어 넣겠다는 계획이다.

1970년대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사고로 잃은 팔다리를 강력한 인공물로 대체해 다시 태어난 초능력자가 주인공이다. 드라마 도입에 중상을 입은 주인공을 앞에 두고 한 정부 요인이 이렇게 말한다.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기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TV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방영하였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우리는 그를 살려야 합니다.” OECD국의 반열에 오른 지금도 이런 감성은 여전하다. 공감도 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