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산업에 기울이는 관심은 특별해 보인다. 지난 2022년 5월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방문을 첫 일정으로 잡은 것부터 인상적이다. 물론 미국도 반도체산업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으려 사활을 거는 만큼 양국의 이해가 일치된 측면도 커 보인다. 윤 대통령은 올 초에도 반도체산업을 '전쟁'에 비유하며 “과학기술 혁명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천천히 순리대로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자산을 총 투입해 치열한 속도전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인적·물적 자산을 총동원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발표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기도 남부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우리의 계획이나 전략보다 더 치열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하는 경쟁구도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에 다름 아니다. 최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는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관련 기업 다수가 미국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황에서 CXMT를 포함해 하위권 기업 몇 곳도 추가 제재한다는 소식이다. 반면 대만 TSMC에는 5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밝혔다. 중국 반도체산업의 싹을 자르겠다는 의지이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도체산업 투자 펀드 조성에 추가로 나서면서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 2022년 후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로 인해 중국의 기술력이 몰라보게 향상됐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분석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를 오히려 더 높였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미 2000년부터 반도체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천문학적인 투자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가 특별히 경계할 대목이다.

다행히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에도 최소 60억달러 이상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하지만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한국의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점유율은 낮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국내 반도체 장비 중견기업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당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정부가 좀 더 멀리 보고 중립적으로 대외관계를 관리해야 할 이유라 하겠다. 28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부지에서 국토부와 환경부 첫 공동회의가 열린다. 좀 더 빨리 효율적으로 단지 조성에 나서겠다는 의지이다.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외관계 리스크도 정부가 일관성 있게 관리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교전 중이다. 따라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결정적 우를 범하진 않아야 할 것이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