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피고

너의 기차가 탈선한다

햇빛 다시 투명해질 때

꼬리 긴 개가 빈집 바라보며 컹컹, 짖을 때

먼 산에 그 투명한 햇빛 그 컹컹소리

스며들어 눈시울 붉을 때

언젠가 지나간 적 있는 땀 젖은 길섶

목련 나뭇가지가 막 피워낸 제 잎을 견디며

오후를 버틸 때

황혼에서, 다시 황혼까지

태양이 흘러간 길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달의 완성을 꿈꾸며 어둠을 한없이 파먹고 있는

60억 개의 붉은 심장들

동행이 죽기보다 지겨워진 지구 여행자들

너의 비행기가 추락한다

목련이 지고

 

▶3월,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는, 사람도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듯이 세상을 수놓은 꽃들은 이미 낙화를 전제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목련의 우아한 자태를 보고서도 저물녘의 시간을 버티는 이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달의 완성을 꿈꾸'면서도 '어둠을 한없이 파먹고 있는 60억 개의 붉은 심장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꽃이 피는 것과 지는 것, 이건 동전의 양면 같은 불변의 등가물일 것이다. 봄날 꽃이 필 때 세상의 대부분은 아름다움에 취해 허공을 아른아른 걸어 다닐 테지만, 일부 사색하는 이의 눈에는 상갓집의 조등(弔燈)이 켜진 것처럼 꽃잎을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목련이 핀 후 '기차가 탈선'하고, 목련이 지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꽃은 피는데, '동행이 죽기보다 지겨워진' 우리들의 모습은 원래 우리의 참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 땀 흘려 꽃을 피우고 진 꽃잎을 거름으로 거두는 단순한 삶에서 행복을 누려왔다. 이제는 너무 철학적으로 삶을 비틀어 봄날의 향연을 지옥으로 변질시키는 사색의 왜곡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탄생과 소멸이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예술이듯, 떨어져 누추해진 목련 꽃잎을 주워 오래 바라보면 누추한 꽃잎은 바로 어제의 나였음을 알게 된다. 꽃이 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지지 않으면 다시는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br>
▲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