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진솔한 의학 이야기'는 진료실에서 다 하지 못한 건강과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원고지 10매의 글로 독자에게 알려드리는 코너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료계 사태가 일어나 한 달을 끌면서 이런 작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기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칼럼의 원칙이 건강 이외의 것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지만, 이번만 예외로 이번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는 솔직한 소회를 적어보려 한다.

환자분들을 놓을 수 없어 오늘도 병실을 지키고 있지만 정부의 일방적 정책 발표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국민의 비난까지 받게 된 전공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짓눌린다. 스승이나 제자나 한편이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어린 의사라 해도 환자를 떠나는 것은 본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인데, 그만큼 충격과 분노가 깊은 것이다. 환자들은 남은 교수들이 살펴 주리라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의사의 덕목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랑을 받고 성장하듯, 환자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격려를 받으면서 조금씩 각성하는 것이다. 서투른 위정자들이 그런 기회를 고스란히 뺏고 전공의들을 사회의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수련을 마치고 곧 제 역할을 시작해야 할 7000명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인턴은 공백이고 의대생, 전임의 모두 모라토리엄에 빠져 있다. 최소 5년 간 의사 인력의 진공 상태가 시작되고 있다.

OECD 국가의 의료는 저마다 독특하다. 우리 의료는 빠르고 싸고 수준이 높다. KTX 표만 끊으면 원하는 병원의 진료를 무제한 접할 수 있다. 영국은 공평하고 고르지만, 말할 수 없이 느리고 관료적이며 지역을 벗어나려면 통제를 받는다. 미국? 그곳은 가진 돈에 따라 다르다.

우리 의료의 특성은 대형 할인마트에 가서도 백화점 수준의 물건을 찾는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탁월한 보험 체계와 그 틀 안에서 높은 노동 강도로 낮은 수가를 보존해 온 의사의 근면이 어우러져 절묘한 균형점을 이루었다. 요컨대 케인스식이나 사회주의적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정해진 규제 안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시장 자유주의적으로 맞춰진 결과이다.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의사를 양성하는 데 독일이나 영국처럼 국비를 들이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의료 특성을 살리면서 필수의료를 살리고 지방에서도 원하는 수준의 의료혜택을 받게 하려면 OECD 수준에 맞는 정부 지분을 들고 와서 조심스레 시장 균형에 참가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노인이 많아지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광고 카피 같은 단순 논리 하나로 미묘한 균형의 한 축을 무너져라 걷어차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이 아니라 이익을 보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라 말했다. 지난 역사에서 많은 위정자가 빵집 주인의 동기를 빼앗으면 모든 것이 통제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맛없는 빵을 배급받으려는 긴 줄로 끝이 났다. 모두가 공평하게 긴 줄을 서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긴 줄은 불만과 부패와 웃돈의 세상을 만드는 법이다.

개혁의 목표가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같은 것이라면, 좋다. 대신 그걸 제대로 설명하고 평균화된 의사, 통제, 그리고 어쩌면 긴 줄도 감수할 수 있는지 국민과 합의해야 한다. 의사 집단을 하향평준화시켜 그 낙수 효과로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아이디어라면 그것도 좋다. 대신 앞으로 질 높은 의료는 자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한다. 정부가 종착지를 생각해 보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리라 믿어 본다. 현명한 국민이 그런 것들을 냉철하게 따져 볼 것이라 기대해 본다. 성급함은 모든 것을 망친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애써 털어내고 병동으로 올라간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