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1967년 미국의 여름은 길고 무더웠다. 아틀랜타와 디트로이트 등 미국 전역에서 159건의 인종폭동이 발생했다. 여러 도시에서 방화가 발생하고 총격전이 벌어져 그해 9월 집계로 8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노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는 바로 그 해 흑백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푸른 나무와 붉은 장미를 봅니다. 당신과 나를 위해 활짝 피었군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작곡가(조지 와이스)가 원래 루이 암스트롱에게 준 곡이 아니었는데, 염두에 두었던 가수가 거절하는 바람에 그의 노래가 되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말해요.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아기들이 우는 소리를 들어요. 그리고 그들이 커가는 걸 지켜봐요. 그들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걸 배우게 될 거예요.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작곡가의 바람과는 달리 정작 미국에서는 노래가 크게 히트하지 못했는데, 영국에 알려지면서 크게 유명해졌다. 루이 암스트롱 특유의 창법, 느리고 단순하면서도 여운이 큰 멜로디와 가사의 호소력 덕분일 게다.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더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1987년 영화 '굿모닝 베트남'을 통해서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출세작이기도 한 '굿모닝 베트남'에서 이 곡은 오에스티(OST)로 쓰였다. 영화 예고편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니, 베트남 농촌의 일상과 네이팜탄이 터지는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이보다 더 평화의 역설을 보여주기도 힘들겠다 싶다. 베트남전 영화 '플래툰'(1986년작)의 OST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곡 자체가 애조를 띠기 때문에 극적 장면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왓 어 원더풀 월드'는 슬로우비디오로 정반대 정서를 대비시켜 관객의 감정을 뒤 흔든다. 이후 '왓 어 원더풀 월드'는 여러 영화에서 역설적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비극적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엄마(김남주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도 '왓 어 원더풀 월드'는 역설의 정서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드라마의 제목도 이 노래에서 따왔지 싶다. 주인공이 정신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슬픔에 겨워하는 장면에서 느리게 흐르는 루이 암스트롱.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봅니다. 축복의 낮, 신성한 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역설의 미학이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