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세계로 뻗어가는 확산의 도시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정체성(identity)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도 드물다. 정체성은 나와 타자를 구별 짓는 일종의 문화다. 앤서니 기든스는 개인이 속한 문화 속에서 타자와 관계 맺으면서 자신이 그 문화의 일원임을 깨닫게 될 때 형성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정체성은 일종의 같음과 다름을 구별한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변하지 않고 항상 고정적인 것인가. 정체성에 대한 근대적 정의로 유명한 존 로크는 정체성을 불변하는 성격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나 울리히 벡 등 소위 탈근대화론자들에 의하면 정체성은 불변적이고 고정화된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재구성된다.

인천의 도시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먼 역사까지 소급하지 말고 근대 이후의 역사만 보자. 인천은 역사적으로 '관문'과 '확산'의 정체성을 지닌 도시다. 관문과 확산은 인천을 다른 도시와 구별 짓는 대표적인 도시 정체성이다.

1883년 개항을 통해 인천은 근대화의 관문지가 되었다. 인천시 중구 일대의 제물포에 가면 개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근대 사적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개항 전 인천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 등 서세동점의 시기에 일본과 서구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갖은 시련을 겪었다. 인천 개항 역시 1882년 임오군란을 처리하기 위한 제물포조약의 산물로서 수동적 개항이지 않은가. 제물포 일대 개항장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장소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수탈의 역사도 또렷이 읽을 수 있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인천 개항은 능동적인 근대화의 관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식민지의 관문으로 전락했다. 관문의 정체성으로 인천 개항의 역사를 보면 가슴 한켠에 남는 아쉬움이 자못 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인천은 도전과 개척 그리고 자유의 정신을 대한민국과 세계로 확산한 정체성도 지니고 있다. 1902년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고 인천항을 출발해 나가사키항을 거쳐 하와이에 도착한 121명은 도전자이자 개척자들이다. 하와이 이민의 역사는 인하공과대학을 시작으로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오늘날 180여 개국 740만 재외한인 확대의 역사로까지 확장되었다. 인천항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에게 인천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싹을 틔운 도시다.

1950년 9월 15일 월미도와 인천항을 중심으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절체절명의 공산화 위기로부터 자유를 지켜낸 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가치를 한반도와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민과 인천상륙작전은 관문의 역사가 아닌 인천을 통해 개척과 자유의 정신을 세계로 확산시킨 역사다. 그래서 인천의 도시 정체성은 세계로 뻗어가는 확산의 정체성이고, 제물포는 개척과 자유의 정체성을 품은 역사적 장소다.

무릇 한 도시의 정체성은 그 도시의 가치를 보여주는 역사를 담아야 하고 그 역사는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제물포 르네상스는 하나의 원도심을 재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인천을 상징할 수 있는 역사적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포 르네상스 사업에 개척과 자유의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제물포가 지닌 개척과 자유의 역사적, 장소적 가치를 핵심 정체성으로 재구성해 그 파급효과를 인천과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로 확장하자. 세계로 뻗어가는 확산의 정체성. 제물포 르네상스 백년지대계의 시작이자 글로벌 도시 인천의 브랜드를 만드는 초석이다.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