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 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짧지 않은 삶에서 내 정체의 대부분은 교육공무원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이면 나는 비로소 교직을 떠나 정치적 시민이 되어있을 것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배웠듯 거리낌 없이 윤석열 만세를 외칠 수도 있고 이재명을 연호할 수도 있다. 오죽하면 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후배가 “이제 정치에 대해 말할 자유를 얻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고 했겠는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영화 '파피용'을 떠올렸다. 절벽에서 파도를 향해 몸을 던진 앙리 샤리에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루이 드가는 지나온 내 인생이 남긴 표정과 기막히도록 닮았다. 마지막 장면을 타고 흐르는 주제가 'Free as the Wind'는 들을수록 아프고 쓰리다. 이빨마저 다 달아난 황혼녘 인생에 남은 자유라니, 바람만큼 무상하다.

나도 한때,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이었다.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학생들이 청계천에 쏟아져 나왔고 이명박 정부는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는 말로 시위대와 교사들을 모독했다. 누가 사주한다고 광화문 거리를 메울 학생들도 아니었고 교사들에게는 정치를 운운할 권리가 없었다. 학생들은 폭주하는 MB정부를 'Mad Bulls'라고 풍자하며 '미친 소는 싫다'고 외쳤다. 교사들은 입을 열 수 없었고 타는 속을 대신해 교사시국선언이 터져 나왔다. 인천 교사를 대표한 나는 회견문을 발표하는 자리에 섰다. “정치 좀 잘하라”로 요약할 수 있는 수만 교사들의 충언은 정치적 집단행동이 되었고 나는 주동자 중 한 명으로 해직되었다. 뛰어내려 자유를 얻은 게 아니라 '악마섬'같은 정치의 덫에 갇힌 자가 나였다.

무형의 족쇄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교사들을 비롯한 교육공무원들에게는 행동을 주의하라는 지침이 하달된다. 그 흔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특정 정치인을 반복해서 '좋아요' 했다고 수사기관에 불려 다녔던 동료들이 있다. 18세 제자들은 정치 활동이 가능한데 가르치는 교사는 여전히 정치 금치산자 취급을 받고 있다. 과잉 정치 시대에 교육공무원들은 과소 대표되면서 국회와 시의회에 교육 현장 전문가가 희귀하다. 겨우겨우 서이초 선생님이 순직을 인정받았지만 30만 교사가 몇 달을 국회 앞에 진을 치고 있어야 법구절 몇 개 손 볼 수 있다.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을 거리 시위가 대체하면서 교육자들의 자존감과 의욕은 바닥을 기고 있다.

교사 권재원은 “교사가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거나, 학교에서 정치적 입장을 다루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라에서는 절대 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면서 이런 나라 국민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라고 했다. 정치를 불온하게 보고 교사를 정치적 투명 인간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다. 선진 국가는 교사 정치 활동이 자유롭다. 공론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정치 토론이 교실에서 이뤄지려면 교사가 '정치 천민' 신세를 벗어야 한다. 정치활동권을 확보하자는 입장에는 교육계 보수 진보 진영 차이도 없다. 교사끼리도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토론해야 민주주의 생태계가 풍요로울 수 있다. 독일 민주주의는 정치 교육과 10%를 훨씬 상회하는 교사 출신 연방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뒷받침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다가 하고많은 주제 중에 정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스스로 탐탁지 못한 맘이 습관인 듯 밀려든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벼랑 끝에서 한 발을 떼지 못하는 드가처럼 살다 보면 그 삶에 젖는다. 교육공무원으로서 나는 일찌감치 정치 권리에서 배제된 삶에 길들었다. 어릴 때 천으로 동여매 성장을 가로막은 전족은 천이 풀려도 뛰어오르지 못한다. 해방되었다지만 나는 여전히 혀가 굳어 정치 발언에 어눌하다.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글이 많은데 고작 정치 이야기라니, 남은 생의 바다에서 정치는 금기어가 아닌데 정치 회피 기제가 금단 증상처럼 깊다. 정치의 바다에 몸을 던지려 발걸음 떼듯 이 글을 쓴다. 제2의 인생이든 남은 인생이든, 드디어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