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배 SMA건축사사무소 대표.
▲서문성배 에쓰엠에이(SMA)건축사사무소 대표∙공공건축가

하루가 다르게 저층주거지, 노후주거지들이 재개발을 거쳐 예전의 일상적인 공간들은 새로운 집인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간다. 마당이 있고 골목길의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느덧 우리의 공간은 아파트로 대변되는 공간의 사슬에 엮어져 버린 느낌이다. 지금의 집은 인간의 삶터보다는 투자대상의 소유물로 여겨져 이제 아파트는 대한민국 주거유형의 정답이 된 듯하다.

우리 사회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개인의 다양한 삶과 행복이 중요한 가치로 재조명되어 주거가 부동산의 가치보다는 삶의 가치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 집은 공급자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주거공간이 아닌 다양한 삶에 대한 요구와 가치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전에도 저층주거지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다음 두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대부분의 저층주거지, 즉 빌라촌 중심의 동네가 아파트로 재개발되지 않고 현대인의 다양한 삶에 알맞고 저층주거지가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살고 싶은 동네'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저층주거지가 아파트에 이은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주거유형이 아닌 다양하고 세분화된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선택적 주거유형으로서의 발전방향은 무엇일까?

저층주거지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커뮤니티 접촉점, 소통의 골목길, 마당 깊은 집, 마을이야기 등 다채로운 콘텐츠와 다양함을 보여준다. 도시가 유기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리단길, 가로수길, 익선동, 연남동 등 소위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장소들이 대부분 저층주거지, 즉 빌라촌이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주거환경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생활 SOC 시설이 부족하거나 열악하여 개선이 필요한 지역이 대부분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나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각종 주민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필자는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의 1층 필로티주차장을 관심 있게 보고자 한다.

1층에 있는 필로티주차장들을 주민들의 접근이 용이한 다양한 생활 SOC 시설로 공간 재구조화를 시도하면 어떨까? 또한 다양한 계층과 요구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융통성 있는 멀티공간으로 변신하면 어떨까? 골목을 따라 선형으로 펼쳐진 이들 공간의 연속은 저층주거지만이 갖는 독특하고 특색있는 '슬세권' 동네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동네는 앞서 언급한 핫플레이스 동네의 다양한 콘텐츠와 더불어 주거의 편리성과 다양성이 덮여져 재미있고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저층주거지는 다양한 요구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의 융통성이 존재한다. 즉 수요맞춤형 공간으로의 전환이 매우 용이하여 트랜스포머 같은 공간이 가능하며 같은 공간이라도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전혀 다른 공간으로의 변신 및 활용이 가능하다. 아울러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므로 시설예산비 절감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차장법이나 각종 조례의 개정 및 해당 부동산 소유주에 대한 인센티브 등 고도의 민·관협업이 요구된다.

이제는 사람들은 획일화된 주거환경에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과 삶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주거환경에 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기존의 공간을 없애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공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공간의 재구조화 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서문성배 에쓰엠에이(SMA)건축사사무소 대표∙공공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