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천 배다리 어느 교복집.

우리가 구도심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컸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이 오래된 도심에 많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 오래된 식당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 세상일이 모두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한편에서는 세상을 좀 더 엉뚱한 방향으로,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끌어당기는 어떤 자력들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인천에서는 이곳 동인천이 번화가였다. 동인천은 늘 학생 천지였고 천국이었다. '약속의 땅' 대한서림을 중심으로 분식집 탁구장 오락실 문방구도 모자라 학생백화점이 상권 한복판에 있었다. 지하상가는 또 얼마나 번창했는지 학생들이 원하는 것과 원하면 안 되는 것들까지 모조리 갖추어 놓고 있었다.

옷을 사러 갔다가 일명 '빨간책'까지 사는 원 플러스 원 강매 행사가 도처에 난무했던 곳. 오성극장이나 미림극장에 영화를 보러 양키시장까지 진출하는 날에는 세상은 그야말로 '던전' 그 자체였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도 진풍경은 난무했다. 등굣길 동인천역부터 시작해 대한서림 방향으로는 이어지는 학생들의 교복 행렬은 마치 남극의 펭귄 떼의 행진 같았다. 교복은 학교마다 하나같이 왜 그렇게 칙칙하게 비슷했던지 멀리서 보면 마치 '윌리를 찾아라'처럼 모두 그 애가 그 애 같을 지경이었다.

“리모델링은 리멤버링이다.” 추억이 있는 동네에 다시 와 살아 보니 이 말이 이해가 된다. 내가 지금 사는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 사는 것이 어쩌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개발이란 풍파에서 빗겨 나 있는 이곳엔 아직 그때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 흔적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 있어서 사는 것이 덜 퍽퍽하다. 그 기억 속 공간과 추억으로 들락거릴 수 있는 것이 이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집은 무엇일까. 어떤 공간에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이가 신도시를 향해 떠난 반면 여기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왜 그러지 않았을까. 무엇이 자신이 사는 공간을 선택하게 하는 걸까. 단지 돈의 문제일까. 비싼 동네에 살면 정말 살기 좋은 걸까. 살기 좋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럼에도 자신이 사는 집과 동네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봉봉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