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김은호 문하생…국전 등단
수원 첫 한국화 동인 '성묵회' 결성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실력 인정

영모화조·인물·산수풍경 등
대표작과 배경자료 함께 전시
온화·담백한 작품 세계 선사

6월9일까지 1전시관서 개최
▲ ‘이길범:긴 여로에서’ 포스터.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 ‘이길범:긴 여로에서’ 포스터.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이 수원작가에 대한 재평가 및 연구 일환으로 '이길범:긴 여로에서'를 개최한다.

한국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수원작가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을 형성해온 작가 이길범의 생애와 작품을 회고한다.

▲ 이길범 작가.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 이길범 작가.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이길범은 1927년 수원군 양감면에서 태어나 17세부터 산수, 화조, 인물 전 분야에 걸쳐 큰 명성을 얻었던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6여 년간 그림을 배웠다. 봄날의 온후한 기운을 그린 화조화 '춘난(春暖)'(1949)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입선, 등단했으나 6.25전쟁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게 된다.

제2국민병으로 소집된 작가는 대구와 제주, 부산에서 훈련 괘도(걸그림)를 그리며 복무하다 대한도기(부산 영도)와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도안 디자인과 삽화를 그리는 생활을 지속했다.

이후 53세가 되던 해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며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1982년 수원미술계에 첫 한국화 동인인 '성묵회'를 결성하고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참여해 인물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작품들을 소재에 따라 '영모화조(새, 짐승, 꽃, 새)', '인물', '산수풍경'으로 구성해 주요 대표작을 선보인다. 더불어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는 자료를 함께 전시해 이길범의 발자취와 수원미술사가 전개돼 온 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 이길범, 수원화성, 연도미상.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 수원화성, 연도미상.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먼저, 그가 그린 영모화조화는 인물화와 산수풍경화에 비해 적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소재다. 작가의 등단 작품은 온후한 봄볕 아래 노니는 오리의 모습을 담았고, 1981년 수원백화점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 소개된 대표작은 꿩과 까치를 그린 영모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인 '오수(午睡)'(1948)를 시작으로 꽃과 나무, 새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 '정조 어진(곤룡포)', 1988,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 '정조 어진(곤룡포)', 1988,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인물채색화의 경우, 근대기 마지막 어진 화가였던 김은호의 화풍을 본받아 정밀한 필치와 고아한 채색기법을 익혔다. 198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정부표준영정 제작화가로도 참여했으며, 그 중 '정조' 표준영정은 대중에게 가장 각인된 작가의 대표 인물화다.

작가는 인물과 동물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상상력이 가미된 새로운 작풍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 삽화가로 활약한 이길범의 독특한 구성 방식이다.

이길범의 산수풍경화는 수원작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르다. 작가는 실제 풍경을 스케치와 사진으로 옮겨온 뒤 완성하거나, 실제 장소의 인상적인 부분들을 재조합해 회화화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 '호분동자', 연도미상.
▲ '호분동자', 연도미상.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그중 가장 즐겨 그린 소재는 수원화성이다. 옅은 먹과 청색의 청량한 어우러짐이 특징인 '수원화성'(연도미상)은 현대적 감각으로 변모한 작가의 화풍이 드러나는 대표작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먹의 자연스러운 번짐과 금분을 활용하는 등 이길범 특유의 작풍이 돋보이는 산수풍경화를 만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채영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수십 년간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한 원로작가 이길범을 조명하는 자리로, 작가 특유의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1전시관에서 열린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