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사마천의 <사기>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성어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춘추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월왕 구천은 패권을 차지한 뒤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을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한다. 범려는 구천이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해 도망친다. 그는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한다. 하지만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아 자결한다.

정치권에서 토사구팽은 흔한 일이다. 이승만은 최측근 이범석을 내쫓고, 자신을 지지했던 조선민족청년단 정치인들을 숙청했다. 박정희는 집권 후에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등을 제거했다. 김영삼은 7선의 거물이었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을 부정 축재 의혹으로 정계를 떠나게 했다. DJP연합의 일등 공신이었던 김종필은 김대중에게 버림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에 선거연합을 해체했다. 첫 번째 희생양은 이준석이었다. 그는 4·7 재보선과 대선, 지방선거 승리를 가져다준 당대표였는데,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 상실을 이유로 당원권 6개월 정지를 당했다. 이준석은 20대와 30대 남성을 결집해 세대 포위론 전략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대선 승리를 이끈 특급 공신이었다. 안철수, 나경원, 장제원, 김기현도 토사구팽을 경험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은 최악이었다. 고물가와 민생고를 챙기지 못해 민심이 떠났다. 잼버리 사태와 엑스포 유치 실패로 나라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극우 유튜버 수준의 역사 인식과 권위주의적 행태는 중도와 보수 유권자들까지 멀어지게 만들었다. 작년 말까지 민주당의 국회 과반은 손쉽게 달성할 듯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공천 파동과 내분에 휩싸였다. 친명의 비주류 찍어내기는 노골적이다. 민주당의 공천 과정은 친명의 비명을 향한 복수혈전이다. 물론 친명횡재와 비명횡사로 불리는 친명계 단수공천, 비명계 경선과 컷오프에 드러난 사당화 논란은 이재명만이 했던 것은 아니다. 친이, 친박, 친문, 친윤 등의 파벌과 사당화는 항상 존재했다. 다만 이번만큼 잔인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정치사의 권력투쟁은 토사구팽과 복수혈전을 반복한다.

혁신 공천은 다양한 계층과 세대, 분야의 참신한 인재를 영입해 새로운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현역 대다수가 생존한 무감동 공천과 이재명의 방탄 사천 모두 혁신 공천과는 거리가 멀다. 제대로 된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며 민생을 돌보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비로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현실 문제와 시대정신을 꿰뚫는 가치,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과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