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랜 75'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모티브
영화 속 세상, 현대사회에 경종
▲ '플랜 75' 스틸 컷.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며 청년들의 노인복지 부담이 커진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들이 짊어져야할 짐이 점점 무거워지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플랜75' 정책을 발표한다. 75세 이상의 국민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경우 정부가 준비금과 각종 혜택을 제공해주는 일명 '국가조력사 프로젝트'다.

지난 7일 개봉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75'는 노인이 직접 죽음을 선택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를 적극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그려낸다.

명예퇴직 후 '플랜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바이쇼 지에코 분)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머지않아 영화 속 세상을 마주할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영화는 2016년 일본 사가미하라에서 일어난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을 모티브로 시작한다.

한 20대 청년이 중증장애인 시설에 침입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19명을 무차별 살해하고 20여명을 다치게 한 사건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일본 내 최악의 혐오범죄 사건이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이 사건을 계기로 '편협함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 제작을 다짐한다. 영화 속 청년 테러범이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며 노인 복지를 효율성의 논리로 설명, 범죄를 합리화하는 모습은 감독의 이런 생각과 고민을 관객들에도 던지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런 효율성의 논리를 수용한 '플랜75' 속 죽음을 인도하는 사회의 모습은 친절함을 유지하지만 소름이 끼친다.

결국 '플랜75'를 신청하고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하는 미치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가 생산성이 떨어진 인간을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하려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사라지고 쓸모없어진 부품 중 하나로서 예쁘게 포장된 '죽음'을 강요받는 모습은 모욕감을 느끼는 걸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런 와중에 플랜75 상담센터에서 일하다 가족의 죽음을 돕게 된 청년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분)나, 상담 업무를 돕는 콜센터 직원 요코(가와이 유미 분)가 노인들의 죽음에 자꾸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건 '인간',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존중을 놓지 않으려는 발악처럼 보인다.

또,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노화와 죽음이 '나'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상기시키며, 누구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매서운 경고를 날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영화 속 극적 요소를 모두 배제해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공상과학이 아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혹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로 느껴지길 바란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영화 속 두 청년이 느끼는 '연민'이야 말로 “편협함과 무관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삶에 대한 결정권 외에도 노인들의 노동권과 주거권, 혐오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플랜75'는 이웃 나라 일본이 아닌 급격한 출생률 저하와 연금 고갈, 이로 인한 세대 갈등과 노인 빈곤 등의 문제를 맞닥뜨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다음 '플랜'을 세울 차례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