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예상은 했지만 '병립형 비례제'로 되돌아간 게 아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광주에서 4월 총선의 비례대표 선거를 현행 '준연동형'으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난 21대 총선과 같은 방식으로 비례대표를 뽑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큰 변수가 없는 한 비례대표 의석수도 지난 21대 총선과 비슷할 것이다. 비례대표 의석 47석 가운데 4분의3 이상을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이 별도로 창당하는 이른바 '위성 정당' 두 곳이 독식하는 방식이다. 몰염치를 넘어서 '정치 카르텔'의 막강한 기득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렇게 갈 것을 지금껏 시간만 끌다가 총선 두 달 전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선거구 획정도 아직 안 됐다. 예비 후보는 벌써 현장에서 뛰고 있는데도 선거구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느냐고 묻고 싶다. 두 거대 정당의 이런 행태는 선거법 위반은 물론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는다면 상식으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요즘 '기득권 카르텔'이란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지만 정치 카르텔만큼 막강한 기득권이 또 있을까 싶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요, 철옹성이다.

애초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대1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따라서 지역구를 대폭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그만큼 늘려서 우리 국회에도 다당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및 공론의 방향이었다. 물론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꾸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개헌이 난망한 상황이라면 선거제도라도 다당제에 유리하도록 바꾸자는 대안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제시된 것이 '연동형 비례제'였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역구 독점을 공유하고 있는 두 거대 정당은 철저하게 이런 기대치를 외면했다.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반쪽짜리 '준연동형 비례제'를 택했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상한선을 둬 쥐어짜듯이 의석수를 챙겼다. 더 압권은 이른바 '위성 정당'을 보란 듯이 창당해서 비례대표 의석마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4년 전에 '괴물'처럼 태어난 준연동형 비례제가 아무런 진전이나 개선도 없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허망함을 넘어 자괴감마저 든다.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토록 초라하게 특권화되고 있는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오는 4월 총선에서도 두 거대 양당의 의석수 독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우리 정치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답답하고 막막하다. 단 한 표라도 더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진보정당이나 제3지대 정당들의 타는 목마름이 오히려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에게도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은 따뜻한 4월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