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봉 스님이 만다라를 그리신다

내 평생의 치마, 그 색을 다 갖다 쓰시고도 모자란지

장롱 속 치마도 다 갖다가 쓰신다

아이구 이쁘기도 해라

친정집 떠나 방방곡곡 아기 낳고 새살림 차렸던

엄마들이 다 돌아와 재미있게 구경한다

절집 마당은 넓고넓고 풍경은 뎅그렁뎅그렁하는데

처음으로 색색 날개 치마 차려입은 추석날

바람 속에 설레던 소녀 적 그 아침처럼

빙 둘러서서 포르릉포르릉 한마디씩 한다

조금 있다가 만다라 다 그리신 만봉 스님이

그 모래 치마들 몽땅 쓸어다 바람에 날려버릴 줄도 모르고

이쁘다고 이쁘다고 그런다

보살님들 저리 가세요, 여기가 어디라구

싸리빗자루 든 공양주 보살이 쫓아낼 때까지

평생의 치마들 다 벗어 갖다 바치기라도 할 듯

지지배배 지지배배 새파란 처녀들보다 시끄럽게 그런다

 

 

▶'만상(萬象)이 다 공(空)함'을 표현한 것이 '만다라'라고 했던가. 가고 오고, 들고 나는 모든 일이 이 도리에 있음을 알면서도 이 순간에도 내 몸은 자꾸만 색에 얽혀서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풀풀 날리니 오늘 하루만의 삶이라도 여여(如如)함으로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평생의 치마, 그 색”에는 무심한 “절집 마당은 넓고넓고 풍경은 뎅그렁뎅그렁하는데” 나는 자꾸만 코도 그리고, 눈도 그리고, 입도 그린다. 내 손 안에는 하나 가득 세상의 온갖 것들을 움켜잡고도 부족해서 또 무엇을 움켜잡으려는 듯 손가락 마디가 얼얼하도록 손톱을 세우고 있다. “그 모래 치마들 몽땅 쓸어다 바람에 날려버릴 줄도 모르고” “내 평생의 치마, 그 색을 다 갖다” 쓰고도 기어코 “장롱 속 치마”까지 “다 갖다가” 써야 직성이 풀릴성싶은 이 어리석은 나의 아집은 언제쯤이면 고쳐질 수 있을지…… 눈이 온다. 내리는 눈은 한 사흘 풀풀 날려서 길에도, 우리 집에도, 내 마음의 뒷골목에도 한길쯤 하얗게 쌓였으면 좋겠네.

▲ 주병율 시인
▲ 주병율 시인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