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제법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여야 비호감 경쟁이 이미 도를 넘어선 상황에서 어느 쪽이 압승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정말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는 그런 긴장감이다. 그렇다고 제3지대 정당들이 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보인다. 그들 또한 얼마 전까지도 거대 양당을 대표했던 사람들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여러 군상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중엔 반가운 사람도 있지만 이미 검증이 끝난 퇴물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듯 이제야 기회가 왔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의 표정도 낯설지 않다.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이미 대세를 이룬 듯하다. 이처럼 먹먹한 정치현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이다.

노회찬 의원은 파란만장한 한국 진보정치의 맥을 이어온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비전과 정책, 시선과 눈물은 우리 사회의 미래와 그대로 직결돼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진보세력은 물론 정치권 안팎에서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실 노 의원은 제7공화국론자였다. '87년 체제'는 이미 낡고 병들어서 더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건설'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론'이 좌초되자 노 의원은 2007년 당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제7공화국 건설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가 동력을 상실하며 길을 잃은 한국정치에 강력한 처방전을 제시한 셈이다. 그 후 개헌론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지만 논의만 무성했을 뿐 당리당략의 불쏘시개로 끝나기 일쑤였다.

노회찬의 제7공화국론은 단순한 권력구조 개편 등을 넘어 꽉 막힌 한국사회의 현실을 타파하는 출구요, 대한민국 미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는 방향타였다. 사실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의 위기'는 87년 체제가 빚은 극단적 단면의 모습이다. 무한정쟁과 정치혐오, 극단적 대결구조와 정치테러는 그 산물일 뿐이다. 정말 근본적인 처방전이 제시돼야 할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회찬의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한국사회 전반의 근본적 기조 변화를 새로운 제7공화국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압축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제 개혁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작업을 개헌운동, 제7공화국 건설운동으로 명명하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오랜만에 듣는 노회찬의 목소리처럼 청량하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춥고 외로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깃발을 다시 들어야 한다. 노회찬이 꿈꾼 제7공화국 건설, 비록 찢기고 빛바랜 깃발일지라도 봄바람에 더 높게 펄럭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