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와이프'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모티브
'LOVER' 등 4개 막으로 전개
소수자 삶 단편적으로 그려내
박지아·김소진·송재림 등 열연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br>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

네 번의 시간, 네 번의 '노라'가 있다. 그리고 노라를 만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딸과 아들이었던,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던 이들은 생김새도 성격도, 성적 지향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삶이 있다. 주어진 시간과 환경 속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이 선명한 목적을 위해 고달픈 여정을 선택한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연극 '와이프'는 일종의 투쟁기를 다룬다.

작중 여러 인물이 남들과 다른 자신을 애써 외면하고 억누르기보다, 힘겹지만 마주하고 드러내는 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시대 속 투쟁은 처절하고 신랄하지만, 한 편으론 당당하다.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

'와이프'는 1959년 , <수잔나와 데이지>, 1988년 , <에릭과 아이바>, 2023년 , <남자와 카스>, 2046년, <수잔나와 데이지>을 배경으로 한 네 개의 막으로 전개된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1879)을 모티브로 삼아, 아내 '노라'가 남편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강요받아온 삶을 내던지고 자신만의 삶을 위해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사용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1막은 1950년대 연극배우 '수잔나'가 극중극 '인형의 집'에서 '노라'를 연기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겠다” 선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잔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젠더를 넘어서며 '노라'나 '노라의 남편'을 연기하지만, '나답게' 살고 싶은 주변 인물들에게 매번 새로운 영감을 주는 인물이다.

수잔나의 '노라'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들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매순간 삶을 마주해나간다.

가든파티에서 만난 여배우 수잔나를 사랑하지만 남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이지', 언제나 큰 목소리로 세상에 '게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바',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날까 조바심을 내는 '에릭' 등이 각자의 선택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br>
▲ 연극 '와이프' 공연사진. /사진제공=㈜글림컴퍼니

좀 더 적나라한 묘사도 등장한다. 게이 커플 에릭과 아이바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술집 주인으로부터 거친 모욕과 위협을 받는가 하면, 한때 연인을 휘어잡으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던 아이바는 3막에선 젊은 연인에게 휘둘리는 힘없는 중년으로 묘사되며 소수자로서의 외롭고 힘든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소수자들의 억압과 차별을 현실적이고 촘촘하게 다루는 만큼, 저항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LGBTQIA(성소수자) 관련 각종 사건, 인물, 작품 등 배경지식이나 엄청난 대사량의 이해가 요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165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박지아, 김소진, 김려은, 최수영, 정웅인, 오용, 이승주, 송재림, 정환, 홍성원, 신혜옥, 표지은 등 배우들의 열연 때문. 연극 '튜링머신', '테베랜드', '더 웨일' 등을 연출한 신유청의 섬세한 연출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2019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연극 '와이프'는 다음달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계속된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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