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2024년 1월 1일 일본 노도반도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주택 건물 도로 등이 파손되어 지금도 복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시민들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여,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천재지변에 익숙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동길 교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김교수가 일본 학자에게 묻기를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매스컴 보도를 보면 일본 사람들은 거의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 한국이면 희생자 가족들이 울고불고 난리였을 것이다. 이게 한국과 일본이 다른 사고방식을 가져서인가”하고 물었다고 한다. 일본 학자가 대답하기를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후 유족들이 한국처럼 울고불고 난리였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뉴스를 통해 세계로 나가자,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런 후진적 모습 보이지 말고, 선진국답게 신속히 복구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촉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 국민은 정부 요구대로 우는 것을 멈추고 피해복구에 전념했다고 일본 학자는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재해가 발생해 희생자 가족이 오열하는데, 정부가 나서 우는 모습 그만 보이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반응했겠는가”하고 물었다. 아마 그러면 한국 국민은 “슬퍼서 우는데 왜 정부가 나서 울지 말라고 하냐? 정부가 뭘 해 주었다고 울지도 못하게 하냐”며 더 난리였을 것이다.

결론은 한국인의 이런 기질이 한국을 민주사회로 만드는 초석으로 작용한다고 일본 학자는 평했다. 일본 학자 왈, 일본은 절대 민주국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이 정부와 조직에 너무 순응하기 때문에 저항과 반발을 못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민은 정부 행위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표현하고 저항하는 기질이 있다. 이런 기질 때문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성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은 “정부에 저항하는 영혼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그 영혼이 언제나 깨어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남겼다(해커와 화가, 98쪽). 멋지지 않은가! 세상에는 미국다움(American-ness)이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즉, 자유를 추구하고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을 성취케 하는 정신이다. 이제 한국도 한국다움(Korean-ness)을 정립해 '민주주의 꽃'을 멋지게 피워보면 어떨까?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