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남·양평은 결국 폐지
지자체 관련 사업 한 건 못해
시흥시 “필요땐 개정 재추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은 '남북교류'와 연관된 조례나 기금을 유지할 명분이 줄어들고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데 이어 대남협력 기구를 폐지하는 방침을 새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7일 인천일보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경기지역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앞다퉈 남북교류와 관련된 조례를 제정했다. 문화·체육·학술·경제 등의 분야를 북한과 교류하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 지자체는 파주 임진각과 북한 개성을 달리는 평화마라톤, 말라리아 남북공동방역, 북한 초청 청소년 박람회 '금강' 평양공연, 남북유소년 축구대회 등을 계획했다.

수원, 화성, 시흥, 연천 등 일부 지자체는 남북교류협력기금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실패한 채로 끝나면서 상당수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도의회가 낸 2020년 '남북교류 협력사업 관리강화방안 연구(이하 연구자료)'을 보면 지자체 등은 2019년 기금으로 100억원을 들여 사업 20여개를 진행하려 했다. 집행률은 40%에 그쳤다.

파주시는 2020년 기금 21억원으로 '파주∼개성 간 농업협력사업', '파주∼해주 율곡 이이 선생 문화교류' 등을 추진하기로 했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며 사용이 전무했다. 연천군이 계획한 5억원 규모의 평양 아리 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도 개최되지 않았다.

지자체는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했지만, 관련 사업을 단 한건도 하지 않았다. 2020년 조례를 제정한 하남시의 경우 계획한 사업이 없다. 시흥시도 2019년 기금을 모을 수 있는 근거가 담긴 조례안을 만들었지만, 지난해까지 단 한 푼도 모으지 않았다. 기금 존속 기한은 지난해 12월까지였다.

심지어 수원과 성남, 양평은 기금을 폐지하는 곳까지 나왔다. 기금을 없애는 과정에서 정쟁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을 비롯해 폐지 반대측은 "조례 폐지안은 남북관계를 냉전과 반복, 대결의 시대로 회귀시키는 일"이라며 유지할 것을 요구해 왔다. 폐지를 찬성하는 국민의힘측은 "지자체가 기금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하다"고 맞섰었다.

도교육청도 2023년 12월 사용기한 종료되는 기금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었다. 다만 도의회 심의과정에서 2년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처럼 기금 활용도를 놓고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더욱더 악화하면서 기금이나 조례를 유지할 구실이 희박해지고 있다.

시흥시 관계자는 "기금이 없다 보니 사실상 실효성 없는 조례다"며 "필요하다면 조례를 개정해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남북교류사업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는데,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다 보니 내부검토 중이다"며 "검토할 부분이 많아 당장 중단하기엔 어렵다"고 했다.

한편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지난 15일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 족속들과는 민족중흥의 길,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날 '통일 폐기'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헌법에 명기하겠다는 방침을 선포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