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오래 살다 보면 남성 다섯 명 중 두 명이, 여성은 세 명 중 한 명이 겪는 일이 있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혼? 자녀가 결혼 못 할 확률? 손자를 못 볼 가능성? 어떤 일상적 사건을 나타낼 것 같은 이 확률은 암을 겪을 확률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평균기대수명까지 살면 30~40%가 암을 진단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우리나라 암 유병자 수는 약 228만명이다. 23명당 1명, 65세 이상에서는 7명당 1명이다. 대구광역시 시민 수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전체 초등학생 수는 266만명이었다. 반 이상은 5년 초과 생존자, 즉 완치자인데, 대전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137만 명이었다. 암 유병자가 베이비 붐처럼 학동기 인구 같은 새로운 인구 집단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암이 늘어나게 된 것일까? 흡연이나 감염 같은 환경이 유발하는 암들은 지난 반세기 세계 각국 보건 당국이 캠페인, 백신 접종 등 전력을 다해 통제한 덕에 후진국을 제외하고 대폭 줄었다. 환경 원인 암들이 줄면서 유전적 성향도 표면에 떠올랐다. 여기에 암의 발생과 제어의 유전자적 원리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좋은 습관도 중요하지만 부모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암은 그저 불운의 결과라는 견해도 나왔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명망 있는 연구진들이 암의 원인을 환경, 유전, 돌연변이의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한 결과 무작위 돌연변이가 앞의 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발병 원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이언스>에 실린 이 논문은 “암의 3분의 2는 불운의 결과이다”라는 헤드라인으로 매스컴을 탔고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발암 요인과 환경이 잘 통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직은 받아들이기 위험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금세기 암 발생의 증가에는 수명의 증가라는 역설적인 원인이 있다. 환경이 통제되고 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는 '암의 불운설'은 설득력이 있다. 돌연변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필연적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실제 연령별 암 발생 그래프를 보면 60대가 되면 치솟기 시작해 70~80대가 되면 3배 가까이 빈도를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붐을 타고 있는 암의 3분의 2는 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운성 암이다.

희망적인 것은 암 생존율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의학적으로 5년 이상 생존하면 완치로 보는데, 1990년대 초반 5년 생존율은 42.9%였지만 2020년은 71.5%이다. 게다가 췌장, 담도 암 같이 예외적으로 치명률이 높은 것들을 제외하면, 나머지의 생존율은 사실상 90%를 넘고 있다. 암 생존율이 높아진 것은 의료의 발전 덕도 있지만, 요즘 암들이 덜 공격적인 노령층 암이 많고 결정적으로 암 검진의 대중화로 조기 발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난치암은 있으며 이런 암과 숭고하고 영웅적인 투쟁을 하는 환자들과 의료진들도 있다. 그러나 집단적 관점에서는 많은 암은 제때 발견만 하면 굉장히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 오래 살면 암 진단을 받을 확률은 세 명 중 하나이지만, 열에 여덟, 아홉은 살아날 수 있다. 이런 행운은 조기에 발견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암은 여전히 두려운 병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소수의 희생자를 습격하는 공포의 제왕이 아니라,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불운한 일 같은 것이 되었다. 길어진 삶에서 나타나는 운수 나쁜 사건에서 승률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기검진이다. 행운의 여신은 부지런한 자를 사랑한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