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죽어서도 고초…정부·道는 수수방관

유해·유품 발굴 1년여 넘도록
용역사인 연구원에 임시 보관
안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선감동에 발굴 시도도 못한 유해도
정부·도, 협조 요청에 “진화위 몫”
연구원 “하루빨리 해결해야” 지적

진화위에 떠넘기기 정착 책임은 '팔짱'
▲ 지난 25일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 유해 집단 암매장지에서 피해 유족들과 생존 피해자들이 발굴된 분묘를 바라보고 있다. /김철빈기자 narodo@incheonilbo.com
▲ 아동들을 강제노역과 구타로 희생시킨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유해발굴(시굴)을 지난 10월 25일 안산시 선감동 현장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피해생존자들이 당시 매장지를 지켜보고 있다. /김철빈기자 narodo@incheonilbo.com

지난해 10월2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정부와 경기도의 책임을 명백히 짚으며 진실을 규명했다.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정부와 도는 관련 법을 따르지 않고 선감학원에 입소한 아동들을 구타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인권을 유린했다. 진화위는 당시 피해자들이 최근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진화위가 이처럼 진실을 규명한 지 1년여가 흐른 현재, 무엇이 남겨졌을까.

인천일보는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사안을 되짚어봤다. 그 결과 세상을 등진 피해자, 살아있는 피해자 모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정부는 진화위가 권고한 유해 안치와 발굴, 추가조사, 공식적인 사과, 특별법 마련 등 대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 경기도는 도민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여기에 진화위는 짧은 기간 조사한 탓에 1942년부터 1954년까지 12년여 동안 입소한 피해자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경기도는 이 시기의 피해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인천일보는 이러한 과제들을 상·중·하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선감학원에서 구타와 강제노역 등으로 고통을 겪다 땅속에 묻힌 피해자들은 세상 밖에 나와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시굴해서 나온 유해, 유품들이 1년여 넘도록 민간 업체에 떠맡겨져 제대로 안치되지 않고 있어서다.

아직 안산시 선감동에 매장된 유해들 역시 정부와 경기도가 발굴 시도조차 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초를 겪고 있는 셈이다.

 

▲시굴된 유해, 추모공간 없이 민간 업체에 임시보관

25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진화위는 지난해 9월23일~10월21일 선감학원 유해 매장지 중 한 곳인 안산시 선감동 산 37-1번지(900㎡) 일대 5기 분묘 대상으로 유해를 시굴했다. 이 일대는 진화위가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조사한 최대 유해 매장지다. 인근에 다른 유해 매장 추정지도 7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형이 많이 훼손되면서 정확히 어느 곳이 매장지인지 알 수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화위는 당시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진화위는 해당 매장지에서 치아 68점, 단추 등 유품 7점을 발견했다. 진화위는 이 유해들을 선감학원 퇴원아 명단과 비교하며 감식과 검증 작업까지 마쳤다.

관례대로라면 유해들은 공적 시설에 안치돼야 하는데도 진화위는 이를 용역사인 연구원에 임시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원은 유해들을 상자에 넣고 보존처리실에 안치해놨다. 여기엔 보존처리가 되지 않은 금속 고리 단추, 탄창 등 금속류가 들어있는 상자들도 같이 있다.

공적인 안치 시설에 들어갔더라면 추모할 수 있도록 제대로 보관됐을 가능성이 크다. 세종시 추모의집에 있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의 경우 안치실에 실내외 온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대형 항온항습기가 가동되고 있다. 또 유해들은 얇은 한지로 싸여 고스란히 보관됐다. 민간 연구원의 보관 방식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진화위가 올해 9월21일~10월27일 같은 지역 40기 분묘에서 시굴한 치아 210점, 유품 27점도 마찬가지로 연구원이 임시 보관하고 있다.

진화위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진화위는 지난 10월20일 행정안전부 내 임시조직인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위탁 운영 중인 추모의집에 유해가 안치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원단은 추모의집엔 한국전쟁 전후 희생한 민간인 유해만을 안치할 수 있다며 진화위 요청을 거절했다. 시설 성격상 선감학원 사건 유해들을 안치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진화위 관계자는 “유해를 안치할 만한 공간이 확보되진 않았는데 그만큼 시굴은 시급한 문제였다”이라며 “행안부나 경기도와 협의가 돼야 하는데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해 발굴에 책임이 있는 행안부와 경기도는 지난달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안치 방안을 잠시 논의했다. 다만 현재 이들 기관은 진화위가 해야 할 몫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다.

행안부 관계자는 “(유해 안치는) 정해진 게 없다. 업무를 떠넘긴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건 진화위에서 시굴을 한 것”이라며 “일단 시굴하기 전에 협조를 구한다든가 그랬어야 하는데 (진화위는) 그런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소에서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여기저기 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시굴된 유해 안치 문제는 사전에 협의 없이 진화위에서 한 부분으로 진척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내년 2월까지가 용역 기간인 만큼 그때까진 유해들을 맡고 있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연구원의 용역 기간이 끝나는 2월이 지나면 유해 278점, 유품 34점은 어디에도 오고 가지 못할 수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유해를 임시 보관을) 고려하고 한 거긴 하지만 어떻게든 처리가 되긴 해야 한다”며 “게다가 진화위가 한시적인 기구이다 보니깐 그전엔 빨리 해결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경기도, ‘유해 발굴’ 논의 제자리...예산도 ‘깜깜’

행정안전부와 경기도가 당장 시굴해서 나온 유해들을 진화위의 몫이라며 떠넘기고 있는데, 이들 기관은 정작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유해 발굴과 추모 공간 마련에도 나서지도 않고 있다. 유해 발굴과 추모 공간 마련은 지난해 10월20일 진화위가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정부와 도에 책임이 있다고 진실을 규명하면서 각각 권고한 사항이다. 진화위는 당시 선감동 37-1 일대에 140여개의 분묘가 있다고 했다. 진화위는 경기도가 보유한 원아 대장에 퇴소 사유가 ‘탈출’이라고 적힌 게 824명으로 분석된 만큼 이곳에 대한 유해 발굴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어 진화위는 유해를 발굴하면 규모가 클 수 있기에 이를 안치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행안부와 도의 논의는 현재까지 제자리 수준이다. 행안부, 도는 진화위의 권고가 있고 나서 7개월여가 지난 올해 5월 피해자 단체인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행안부는 이 자리에서 도와 실무적인 논의를 거쳐 유해 발굴과 추모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의사를 처음 밝혔다. 이전까지 행안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했고, 도는 핵심 주체인 행안부가 나서면 행정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진화위 권고를 무시했다.

간담회 이후 5개월여가 지난 11월엔 행안부가 도와 유해 매장지가 있는 안산시를 불러 각 기관이 운영 중인 적절한 추모 시설을 찾기로 협의했다. 다만 도와 시 모두 관련 시설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행안부가 시설을 마련해야 하는데, 내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면 내년 역시 유해 발굴은 물론 추모 공간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행안부는 내년 중 추경을 통해 확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선감학원 관련 업무가) 진화위 쪽에서 한 것이다 보니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지 못했다”며 “가능하다면 내년 추경을 통해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행정안전부가 나서야만 행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데 행안부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니 모든 게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기도 역시 가해 주체 기관이면 행안부에 기대면서 원론적인 수준에서 얘기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규·정해림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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