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활동하고 있는 오소리.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오솔길' 어원에는 여러 추측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오소리가 다니는 길이다. 지리산 자락에서는 오소리를 '땅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오소리 생김새가 작은 곰처럼 생겼고, 다리가 짧아 땅에 붙어 다니는 것 같아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오소리는 곰과 달리 족제비, 수달 등이 속하는 족제비과의 포유류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오소리(Meles leucurus)의 영명은 Eurasian ba dger이다. 오소리의 영명인 badger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becheur'로 '땅을 파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뜻으로 Badger의 의미는 '조른다', '방해한다', '괴롭힌다' 등인데, 오소리 습성이 강하고 끈질긴 특성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소리는 두더지와 같이 땅파기의 명수인데, 이는 오소리 앞발이 길고 오므릴 수 없는 강한 갈고리발톱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소리의 땅을 파는 습성은 종자산포에 큰 역할을 하고, 오소리가 파낸 땅굴이 너구리, 여우, 산토끼, 수달 등도 두루두루 이용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에게 오소리가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불과 몇 년 전에 무인 카메라로 포착한 아메리카오소리 동영상이 소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영상은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산에 있는 고속도로 아래 작은 터널에서 코요테와 아메리카오소리가 마치 친구처럼 재미나게 건너가는 모습이었다. 어두운 터널 앞에서 코요테는 뒤처진 오소리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재촉하듯 꼬리를 흔들었고, 다리가 짧은 오소리가 느릿느릿 코요테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마치 디즈니만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라 많은 사람이 좋아했다.

그동안 북미지역에서는 코요테와 오소리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종종 관찰되었으며, 이 두 종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연구 결과 이 둘의 관계는 때에 따라 협력하여 땅속에 사는 동물들을 사냥하는 공생관계로 밝혀졌다. 코요테는 영리하고 재빠르긴 하지만 땅을 잘 파지 못한다. 그래서 땅을 잘 파서 땅속에 숨어 있는 땅다람쥐 등을 잘 잡아먹는 오소리와 협동전략을 구사한다. 또한, 이때 땅 밖으로 나온 동물을 코요테가 놓치는 경우 오소리가 위치를 파악하고 땅속을 파서 쉽게 잡기도 하여 두 동물이 협력했을 때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서로 다른 두 종이 협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오소리가 잡은 동물을 덩치가 큰 코요테가 뺏기도 하므로 완벽한 동맹관계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북미지역의 코요테와 오소리처럼 우리나라에도 오소리와 습성이 비슷한 너구리가 있으며 이 두 종은 생태계 내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너구리와 오소리는 일부 서식지를 다른 어떤 야생동물보다 더 많이 공유하고 있다.

호랑이, 표범 같은 대형맹수가 사라진 우리나라에서 중형 육식 동물인 오소리는 생태계 중간 조절자로서 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여전히 숲 속 한쪽에서는 오소리 쓸개와 기름을 이용하기 위해 굴 주변과 똥 자리 등에 불법 덫을 설치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오소리에 대한 보호가 절실한 상황이다.

12월 추운 겨울이다. 신비하고 소중한 동물 오소리가 인간의 위협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동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서문홍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 서문홍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서문홍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