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삶을 사는 길 위의 인생들
▲ 영화 '길' 중 잠파노가 젤소미나에게 북 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

“하여튼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 쓸모가 있대.”

젤소미나가 자신이 아무한테도 쓸모가 없다고 한탄하자, 곡예사 마또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서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돌멩이도 어딘가 쓸모가 있다면서…. 마또는 젤소미나에게 머리는 형편없어도 뭔가 쓸모가 있을 거라며 위로한다. 이에 젤소미나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안소니 퀸, 줄리에타 마시나 주연의 영화 '길'(1954)은 이탈리아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감독의 초중기 작품으로 아직 네오리얼리즘에 속해 후기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두 주연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순박한 소녀와 짐승 같은 차력사의 비극적 사랑

짐승처럼 거친 차력사인 잠파노(안소니 퀸)가 돈을 주고 죽은 로사를 대신해 그녀의 동생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를 조수로 데려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지능이 모자란 순박한 소녀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몸에 감은 쇠사슬을 끊는 묘기를 선보이는 동안 작은 북을 치며 흥을 돋우고 돈을 거둬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조수로 두며 학대하고 욕정을 채우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영화는 지능이 모자란 순박한 소녀와 짐승 같은 차력사의 비극적인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젤소미나는 자신을 무시하고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잠파노에게 실망해 집에 가겠다며 떠난다. 그러나 길거리를 배회하는 젤소미나 앞에 나타난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억지로 오토바이에 태운다. 한편 서커스단의 일원이 된 잠파노와 젤소미나는 관중들 앞에서 차력을 선보인다. 이때 곡예사 마또가 잠파노에게 농담을 하며 놀려 잠파노의 화를 돋운다. 다음 날 마또는 젤소미나와 한 팀이 되어 나팔 부는 법을 젤소미나에게 가르쳐 주고 이를 본 잠파노가 나팔을 뺏으며 화를 낸다. 젤소미나는 자신하고만 일한다면서…. 마또가 잠파노에게 물을 끼얹고 도망치자 잠파노는 칼을 꺼내 들고서 그 뒤를 쫓는다. 결국 경찰에 체포된 잠파노는 유치장 신세가 된다. 젤소미나는 이참에 잠파노를 떠나 자신들과 함께 가자는 서커스 단원들의 권유도 물리치고 경찰서 앞에서 잠파노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젤소미나는 이젠 잠파노와 함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석방된 잠파노와 함께 길을 떠난다. 젤소미나는 예쁘지도 않고 요리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을 잠파노는 왜 데리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편 마또를 우연히 만난 잠파노는 마또를 몇 대 때리며 혼내주는데 잘못되어 마또가 죽고 만다. 이에 당황한 잠파노는 시체를 유기하고 도망친다. 충격을 받은 젤소미나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잠파노가 곁에 오는 것도 거부한다. 잠파노는 결국 젤소미나가 잠든 사이에 옷가지와 돈 몇 푼, 그리고 나팔을 남겨두고 떠난다.

수년 후, 서커스 단원이 되어 바닷가 마을에 오게 된 잠파노는 길을 걷다가 익숙한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그 노랫소리는 젤소미나가 마또에게 배워 나팔로 불던 곡조였다. 이 곡조를 흥얼거리는 빨래 너는 여인은 몇 년 전 이 마을에 흘러들어온 정신이 이상한 여인이 나팔로 연주하던 노래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느 날 아침 그 여인이 잠에서 안 깨어나고 숨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술에 잔뜩 취해 밤 바닷가에 온 잠파노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오열하면서 흐느껴 운다. 회한에 젖으며….

/시희(SIHI) 영화에세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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