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 어린이'는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아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돌봄은 물론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어린이들을 2014년까지는 '소년소녀가장'이라 불렀으나,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가족돌봄 어린이'로 바꾸었다. 어린이에게 가장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는 취지야 백번 옳으나, 이들을 지원할 제도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가족돌봄 어린이'는 한국 복지의 어두운 사각지대다.

경기도는 지난 5월 '경기도 가족돌봄 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같은 성격의 조례를 제정한 곳이 몇 곳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하다. 하지만 이 조례에서 '가족돌봄 어린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 조례는 지원대상 연령의 상한을 34세로 정하고 있고, 조례명에서 어린이는 아예 빠졌다. 다시 말해 14세 이상 청소년이 조례의 대상일 뿐 지원이 더 절실한 13세 이하 어린이는 배제된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돌보느라 놀 시간도 없고, 학교에 제대로 가지도 못하는 어린이는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된 적이 없다. '가족돌봄 어린이·청소년'을 지원하는 아동복지전문재단 초록우산에 따르면 약 25%가 초등학생이라고 한다. 가족돌봄 청소년 통계에 단순대입하면 약 6만~7만 명으로 추정되는 초등학생이 가족을 돌보는 일에 매여 있는 셈이다. 돌봄의 대상이어야 할 이 많은 수의 어린이가 돌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지원이 없다면 이들은 머지않아 학업포기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100%다. 청소년·청년 지원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지원이 훨씬 더 시급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국회에 '가족돌봄 어린이·청소년·청년 지원법'이 2건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법안은 자동폐기 될 수밖에 없다. '가족돌봄 어린이'를 위탁가정으로 보내는 식의 아동복지가 아니라, 가족의 유대를 끊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게 하려면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법 제정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