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았다. '지면 개편으로 연재를 중단한다'는-. 2019년 1월 8일 15면에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암 박지원' 첫 회를 시작하였다. 이후 격주로 다산 정약용, 초정 박제가,…청담 이중환까지, 각 3~8회까지 15명의 실학자를 71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그러고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2022년 1월 11일부터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으로 제명을 바꾸었다. 첫 회는 '대동일통(大同一統)의 세계를 그리며'였다. 이제 46회를 마지막으로 이 '란(欄)'을 떠난다. 5년 동안 117회를 연재한 셈이다.

정리해 본다.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는 독자들에게 우리 실학자들을 알리려고 필자의 책(『아! 18세기 나는 조선인이다』와 『아! 19세기 조선을 독(讀)하다』)을 중심으로 따라갔다. 15분 쯤 쓸 무렵, 신문사로부터 '이제 선생님이 공부한 실학으로 현 세상을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실학의 현재성, 실학의 존재감이랄까? 흔쾌히 수락했고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이란 제명이 만들어졌다. “2022년 인천일보 새 기획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은 현 사회의 문제를 실학을 통해 짚어보고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려 합니다.”라는 포부까지 적바림했다. 실학이 그리는 세계는 유학의 이상향인 '대동세계(大同世界)', 모두가 '어울렁 더울렁 사는 나라'였다.

2022년은 더욱이 대선의 해였기에 가슴이 설렜다. 글에 그 대동세계를 녹여내자고 하였다. 그러나 제명을 달리하여 쓰는 글의 차이가 극과 극임을 느낀 것은 연재하고 얼마 안 가서였다.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를 쓰는 것은 즐거웠다. 학문을 하듯이 저이들의 글줄만 발맘발맘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은 완연 달랐다. 매 회가 글쓰기의 고통, 그 자체였다. 고인들이 온 몸으로 전한 실학의 세계로 현재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일임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사양했다. 이유는 실학이 이 대한민국에서 전연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전율스런 사실 때문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그 어느 곳에도 선인들이 꿈 꾼 실학은 없었다. 2년 전 내가 생각하는 실학은 이러했다.

여기, 지금: 이 시절 과연 우리는 어떠한 대통령을 뽑아야 이 난국을 헤쳐 나갈까? 그 해법을 최한기(崔漢綺,1803∼1877) 선생의 <기학(氣學)>에서 찾아본다. <기학>은 지금, 현재를 중시하는 독특한 방금운화(方今運化)에 대한 학설이다. '방'은 공간개념으로 '여기', '금'은 시간개념으로 '지금'이다. '기학'에서 '기(氣)'는 우주의 기이고 본질은 활동운화이다. 활(活)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성, 동(動)은 떨쳐 일으키는 운동성, 운(運)은 계절처럼 가고 오는 순환성, 화(化)는 변통이라는 변화성이다. 지금,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여기에서 끊임없이 생성, 성장, 소멸하는 지금의 활동이기에 '방금운화'요, '활동운화'이다.

변화하는 깨달음: 활동운화는 개인의 인식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즉 나를 둘러싼 안팎을 이해하고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확충시켜 상황에 따라 변통할 때 '일신운화(一身運化)'가 된다. 이 개인의 깨달음인 일신운화가 정치와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통민운화(通民運化)'의 국가로 나아간다. 통민운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바로 '일통운화(一統運化)'이다. 일통운화는 한 나라를 벗어나 온 세상으로 확산시켜서 인류 공동체가 도달하게 되는 대동일통(大同一統)의 세계이다. 이 대동일통의 세계가 대동세계이다.

삶에 보탬이 되는 배움: 이제 기학의 '학(學)'이다. 바로 운화를 작동시키는 동력이다. 선각자가 깨우쳐 가르치고 배운 자가 뒷사람에게 전승하는 것이 '학'이다. 학은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학을 가르는 기준은 헛된 것을 버리고 실질적인 것을 취하는 '사허취실(捨虛取實)'이다. 이 학이 인문, 사회, 자연을 아우르는 '일통학문(一統學問)'이다.

국가와 세계의 비전 제시: 한 나라 지도자라면 '통민운화'의 국가를 넘어 '일통운화'라는 세계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거대담론이기에 '일통학문'이라야 가능하다. 국가와 세계의 상황 변화에 맞추어 지속적인 배움의 자세는 기본이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이러한 학문과 정치, 그리고 지금의 변화를 아울러야 한다는 게 2년 전, 내가 생각한 실학이었다.

다시, 지금: 2023년 11월 28일 바로 지금,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의 역사가 잔인하게 흐른다.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글을 쓰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비열한 언론의 사생아인 권력'이, 이 나라를 거머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숙주로서 요사한 언론이 작동하는 한 대한민국의 활동운화는 요원하다. 이 정부의 언론관은 너무 심각하다. 이 란 '(44)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곡(哭)하며'는 네이버에서 '임시적으로 게시가 중단된 게시물'(2023.11.17.)로 통보를 받을 정도다. 하지만, 실학은 오늘도 '일통학문'과 '일통운화'로 '대동일통'의 세상을 그리는 꿈을 꾼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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