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고, 사회과학의 시대였다. 하지만 분노와 저항의 세상을 만들었던 청년들은, 1987년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주역들은, 1991년 5월의 투쟁이 끝나고 약속한 듯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386세대는 민주화 투쟁을 접고 기업과 정당, 시민사회, 노동조합, 문화계 등 각 방면으로 진출한다.
386세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산업화 세대를 권좌에서 밀어낸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쳐 문재인 정권 때 비로소 권력의 위계 구조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평등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하면서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을 독점한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돈과 부동산, 교육의 3종 세트를 동원해 최대 규모의 기득권 세력으로 부상한다.
신도시 개발, 분양가 상한제 폐지, 강력한 노조 등이 이들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청약제도와 노태우 정권의 200만 호 건설정책의 합작품이 386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이 분양받은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의 평당 분양가는 180∼200만 원이었지만, 현재는 평당 2000만 원을 넘는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미분양 물량이 쏟아졌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1999년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다. 그러자 재벌이 고급 아파트를 짓고, 뭉칫돈이 흘러들었다.
386세대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지만 사교육 조장에 앞장섰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녀교육에 집착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이 되자, 자식의 명문대 졸업장에 목숨을 건다. 상위권 학교, 번듯한 직장, 넉넉한 보수, 안락한 삶으로 이어지는 성공의 공식을 따라 막대한 사교육비를 투자한다. 아이들과 청년들을 입시 지옥과 살벌한 취업 전쟁에 내던지고 발버둥 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계급 대립과 과두제의 고착화, 일자리 감소, 원청과 하청의 착취 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 온갖 모순이 중첩돼 있다. 이 중 386세대의 책임은 부분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때 진보의 기수였던 386세대는 청년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고용세습과 취업 청탁, 정경유착 등에 연루된 부패 집단이 됐으며, 산업화 세대가 터를 닦아 놓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22대 총선의 화두는 나라를 위한 비전은 제시한 바 없는 '386 신적폐'와 영남에 기생하고 있는 무능한 구적폐의 동반 퇴출이다. 청년들은 다선 국회의원과 유한계급의 정치인들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청년 세대의 생존 전략은 고소득을 보장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를 여의도에 최대한 많이 보내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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