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용역사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치아 69점·유품 7점 1년간 맡아 와
과업지시서·보고서, 관련 내용 없어
역사적 사건 공공시설 보관과 딴판
행안부·경기도는 '강 건너 불구경'만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두 차례에 걸쳐 시굴한 ‘선감학원 사건’ 유해들을 민간 연구원에 임시로 맡겨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해시굴을 한 진실화해위는 물론 전면 유해발굴을 해야 하는 행정안전부와 경기도 모두 유해 안치에 대해 손 놓고 있다.
▲유해 시굴만 하고 안치는 ‘나 몰라라’
29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선감학원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안산시 선감동 산 37-1(900㎡)에서 5기 분묘 대상으로 시굴했다. 시굴은 용역사를 통해 같은해 9월23일부터 10월21일까지 진행됐다. 용역사는 민간 선사문화 연구기관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맡았다. 시굴 결과 진실화해위는 치아 68점과 단추 등 유품 7점을 발견했다.
이때 진실화해위는 이 유해들을 선감학원 퇴원아 명단 목록에 명시된 나이와 사망자 수를 비교해본 뒤 생존한 피해자들이 교복에 붙은 단추라는 증언을 확보하는 등 감식을 거쳤다. 유해들에 대한 검증 작업까지 마쳤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시굴한 지 1년이 넘도록 유해들을 안치해야 할 공적 시설이 아닌 민간 용역사인 연구원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원은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있다.
관례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의 유해들은 온도나 습도를 고려해 보관해야 하는 데다 피해자, 유족 등이 참배할 수 있도록 공공시설에 안치해야 한다. 세종시가 행안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인 추모의집의 경우 지난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학살된 민간인 유해들을 보관하고 있다.
당시 시굴에 앞서 진실화해위는 유해 안치를 검토하지 않았고 용역 과업지시서에 언급하지도 않았다. 진실화해위가 지난해 7월 발간한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조사 용역 최종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엔 선감동 산 37-1 관련 증언이 확보됐고 일대 보존 상태가 양호해 유해 발굴이 가능하다고 적혔다. 또 권위주의 통치 시기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유해 발굴 필요성과 함께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선감학원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는 정도로만 서술됐다.
이후 진실화해위가 같은해 10월에 낸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시굴조사 보고서’에서도 유해 시굴 과정과 검증 여부 내용만 있을 뿐 안치 방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올해 9월21일부터 10월27일까지 같은 지역 40기 분묘에서 시굴한 치아 210점, 유품 27점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굴은 진실화해위가 지난 8월부터 내년 2월까지 용역 중인 ‘2023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중 하나의 사건으로서 진행됐다. 용역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비롯해 전주대학교 박물관, 일영문화유산연구원이 하는데 선감학원 사건 등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맡았다.
현재 선감학원 사건의 유해들은 감식 절차를 밟고 있다. 일단 치아 대부분이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들의 유해들이라는 게 연구원 관계자 얘기다. 다만 이 역시 진실화해위가 사전에 구체적인 검토 없이 진행한 탓에 연구원이 기약 없이 임시 보관해야 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유해들을 수습하고 보존 처리와 강화 처리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안치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며 “진실화해위가 다른 기관과 협의 중으로 아는데, 지금은 임시로 보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뒤늦게 지난 20일 행안부 내 임시조직인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유해 안치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지원단은 추모의집에 안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지난 25일 세종시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해 실제 안치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유해 시굴을 진행하기에 전에 안치하는 방안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유해 시굴이 그만큼 급했고 올해도 하루빨리 시굴해야만 정부나 경기도가 움직일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행안부·경기도, ‘강 건너 불구경’
행안부와 도는 진실화해위가 시굴한 일대에 유해 발굴 등 중장기적인 계획을 논의 중일 뿐 당장 발견된 유해의 안치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앞서 행안부와 도는 지난해 10월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을 하면서 유해발굴과 추모공간 마련을 권고받은 만큼 유해 수습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발견된 치아 278점, 유품 34점은 진실화해위가 어떠한 협의도 없이 시굴한 것으로 그 수습은 진실화해위가 해야 한다는 게 행안부와 도의 공통된 의견이다.
도 관계자는 “시굴을 하려면 유해 안치에 대해선 당연히 염두에 두고 이뤄졌어야 하는데 검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하다 보니 민간 연구원에 맡기게 된 것”이라며 “진실화해위가 관계기관과 협의도 없이 임의로 하다 보니 진척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진실화해위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아는데 자세한 사항은 모른다”며 “유해 발굴에 대한 부분은 경기도 등 다른 기관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은 “기관마다 좋은 취지로 일하고 있는데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사실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총괄해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군인 양성을 위해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해 운영한 시설이다. 해방 이후인 1946년부턴 경기도가 시설을 인수해 1982년 9월까지 부랑아 수용시설로 사용했다. 이곳에 수용된 5000명 이상 아동은 구타와 강제 노역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식적인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는 24명이지만, 진실화해위는 유해 발굴을 통해 더 많은 사망자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인규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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