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br>
▲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당(唐)나라 시대 동방규라는 시인의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에서 유래했다. 동방규는 한나라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간 한나라 원제의 궁녀 왕소군의 기구한 타향살이 사연을 시로 썼다. 왕소군의 심정을 담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시구가 이 시의 절정 표현이다. 곱씹어 보면 춘래불사춘은 어디 그 옛날 왕소군뿐일까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숨 깊이 느끼는 고사성어다.

개인적으로 IMF 외환위기 직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낀 4월 봄날은 매서운 겨울과 다를 바 없었다. 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서글퍼 보이고 떨어지는 꽃잎마저 외로워 보였다. 그해 4월은 나에게 있어 잔인한 달이었다.

내년 4월10일. 봄이 오면 많은 정치인은 춘래불사춘의 매운맛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경기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속이 타들어 간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기도 59개 선거구 중 몇 곳만 파란 불이기 때문이다.

지금 몇 사람만 모이면 “요즘 짜장면 한 그릇 맘 놓고 사 먹기 힘들다”는 울분이 쏟아진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아우성이 높은데 여당의 캐치프레이즈인 지역 발전과 힘 있는 후보론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여기에 검찰의 정치개입 논란과 일본 오염수 방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사망사건,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논쟁, 윤석열 정부의 인사 실패 등의 악재가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내년 4월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대다수 정치인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성난 민심에 내년 총선에 뛰어든 경기지역 출마자들은 좌불안석이다. 아마도 이런 속 타는 심정을 모르는 곳은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세가 강한 대구 경북, 부산, 경남 등 일부 지역 출마자들뿐일 게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헛발질에 상대적으로 지지세를 얻고 있지만 국민이 보기에 탐탁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연일 계속되는 이재명 대표의 검찰 수사와 재판 출석 뉴스에 국민이 지쳐가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검찰 수사를 대하는 이 대표의 모습이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일련의 이 대표의 정치 행보가 구속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 행위로 보인다. 그렇다고 선당후사의 희생이 보이지도 않는다. 국민의 기대치와 한참 떨어져 있다.

돈 봉투 사건 등 일련의 민주당 의원 일탈 행위와 수박논쟁으로 벌어진 민주당 집안싸움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비명계의 비판의 목소리가 민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공천권 확보를 위한 몸부림으로 비친다. 민주당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2의 야당인 정의당은 이미 국민의 관심 밖에 멀어졌다.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언제부터인가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일명 야권 캐스트 보트(단일화)에 덧칠된 정당 이미지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런 정당에 대한 옥석 가리기는 국민의 몫이다. 이젠 정치인의 시간이 가고 국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 함석헌 선생의 “정치란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놈이 다 해 먹는다”는 말을 국민은 새삼 가슴에 새겨야 한다. 내년 4월 10일을 누구에게는 따스한 꽃길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추운 봄날로 기억되도록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짜장면 한 그릇 맘 놓고 사 먹을 수 있다.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