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도시의 생명력

명품 도시는 세계인 머물도록 유혹
영혼 없는 우리 도시는 부수기 바빠

수백 년 소양 기반 세계적 문화 도시
전후 복구 통해 공간적 조화 이뤄내

인천하면 떠오르는 광고 자원 부족
대체 불가능한 도시 유전자 찾아야
시, 예산 지원·장기적 로드맵 필요
▲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 /사진제공=전찬기
▲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 /사진제공=전찬기

문화 도시·문화 시민은 도시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대문호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때문에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가는 시작이 되었고, 영국이 유럽의 변방에서 문화 대국 대영제국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명곡은 몇 백 년이 흘러도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고, 명화는 몇 십 년이 흘러도 감흥이 남는다. 명품 도시는 세계인을 유혹하고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언제라도 다시 부수고 새로 짓고 싶어하는 대상일 뿐이다. 도시에 철학과 영혼이 없고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명력이 있어야만 오래 간다. 그 생명력이 문화이며 그 결과물이 문명인 것이다.

세계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머리로는 '미래도시'를 꿈꾸면서도, 발길과 눈길은 '과거 문명도시'를 찾아다니며 문명의 경이로움과 매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도 만들기 어려울 찬란한 문명을 어떻게 이룩하고 보존했는지 감탄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 문명에는 건축, 조형, 공예, 토목,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뮤지컬, 무용, 스포츠, 의상, 요리, 철학, 문학 등은 물론 맛과 멋, 매력의 문화 요소가 본질이라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문화의 영어 단어인 'culture'는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했다. 다시 말해 문화라는 용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다담론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편 '교양이 없다'는 말은 '품격이 없다'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영어로 'be uncultured'라고 표현된다. 곧 '교양이 없다'는 말은 세련되지 못하고 문화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뜻인 셈이다. 문화가 인간의 품격을 갖추는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 영국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있는 대문호 셰익스피어 생가. /사진제공=전찬기
▲ 영국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있는 대문호 셰익스피어 생가. /사진제공=전찬기

축적된 문화 소양이 만든 선진국 문명 도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톨레도,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 및 베니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은 도시 전체가 유적이다.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은 차치하고 도대체 어떻게 도시의 모든 건축물을 석조로 만들면서 조각상으로 장식하고, 세밀하게 설계한 웅장한 성당과 공연장, 시청사나 관공서를 중심으로 한 광장과 조각상, 넓은 공원과 녹지, 수변공간과 운하 등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었는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도시계획을 잘했음은 물론이지만, 건물들의 경사 지붕이나 색채 적용,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도시 미관의 백미인 베란다의 제라늄 꽃, 자연과 어우러진 수변공간 등 경관을 고려한 소위 지구단위계획이 완벽한 도시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으로 파괴를 겪었음에도 원형을 유지하고 복원한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마 해답은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문화 소양이 결정적이라고 생각된다.

▲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 때 쓰였던 오르세 기차역을 개조해 재탄생시킨 세느강변의 오르세미술관.
▲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 때 쓰였던 오르세 기차역을 개조해 재탄생시킨 세느강변의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철도 역사에 예술과 문화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영국 글래스고의 켈빈그로브 미술관&박물관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가 전시된 뒤로 매년 수 백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쇠퇴해 가던 도시에 문화를 입혀 재생한 빌바오가 열과 성을 다해 벤치마킹한 곳이 글래스고이다. 금년 말에 개장한다는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麻布台 Hills)는 상업시설보다 넓은 녹지가 있다. 모리빌딩 대표의 말처럼 “다음 목표는 런던·뉴욕과의 경쟁력 싸움”이라면서 연간 방문객 목표를 3000만명으로 잡고 있다. 우리나라 2027년 연간 방문객 목표를 빌딩 하나가 흡인하겠다는 것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도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파리의 에펠탑,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로마의 콜로세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런던의 타워브리지 등은 그 나라의 상징이며 사람을 끌어드리는 앵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랜드마크만 있다고 문화 도시가 되는 건 아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줄 상징이나 브랜드, 심볼 등이 합체가 되어야 문화 도시다운 도시가 되는 것이다.

▲ 벨기에 겐트의 레이어(Leie) 강변의 건축물. 건축은 문화의 복합체로 도시 경관의 백미다.
▲ 벨기에 겐트의 레이어(Leie) 강변의 건축물. 건축은 문화의 복합체로 도시 경관의 백미다.

세계의 시선으로 인천의 위상 파악하고 도시 자원 분석해야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지표 중 GPCI(Global Power City Index)는 일본의 모리기념재단에서 평가하는 지표이다. 세계 주요국 48개 도시의 경쟁력을 경제, 연구 개발, 문화 교류, 거주 환경, 교통 접근성의 6개 분야 70개 항목으로 평가하는 국제 지표다. 2022년 자료에 따르면 1~7위가 런던, 뉴욕, 도쿄, 파리, 싱가포르, 암스테르담, 서울인데, 인천은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인천은 세계 10위권에 도전하고, 초일류도시를 지향하고 있고, '제물포 르네상스'의 사업으로 근대 문명을 재조명하고 집중적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그런 한편에서 '개항장' 못지않은 기원전 18년에 '미추홀국'을 만든 비류의 '개국터'에도 관심을 기울여서 근대사 못지않은 인천의 뿌리를 찾고, 연안과 내륙의 공동 번영과 도시재생에도 관심을 갖는 평형 감각이 필요하다. 의지를 가지고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조물 등이 있고, 정신적·철학적으로 해야 되는 내면이 있는데 그게 문화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부산 EXPO 유치를 위한 홍보 동영상을 보라. 인천에는 매력 있는 그런 광고 자원이 있는가? 인천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있는가? 인천상륙작전을 범국가적인 행사로 추진 중인데, 정작 2016년에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작전명 'Operation Chromite'이다. 'Incheon Landing Operation'으로 바꾸어 인천을 알릴 노력은 왜 안 했을까?

또한 인천의 이미지와 매력은 어떤 것인가? 기가 막히게도 인구 300만 도시에 음대, 미대가 없고, 이건희 컬렉션의 인천 전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야적장 면적만 해도 26만평인 내항이나 168개의 섬 중에서 APEC을 개최할 구상이 있을까? 연간 1억명이 방문하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주얼(Jewel) 창이'를 보면서 인천공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산 송도 케이블카를 보면서 영종도에서 월미도를 거쳐 내항과 연안부두를 잇는 케이블카를 볼 수 있을까? 동해안에는 정동진과 바다열차가 있는데, 인천 정서진의 낙조를 알리고 해안선마다 바다낚시의 명소로 만들 생각을 왜 안 하는가. 송도 워터프런트에 요트 마리나 하나를 만들 생각이 없이 어찌 초일류도시가 되겠는가. 문명 시설이 없으면 문화는 싹을 틔울 수가 없다. 또 문화 없이 만든 문명 시설은 사상누각인 것이다.

▲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볼프강 호수 주변의 작은 광장과 꽃장식이 된 주택들. /사진제공=전찬기
▲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볼프강 호수 주변의 작은 광장과 꽃장식이 된 주택들. /사진제공=전찬기

인천 미래도시의 변화에 적응할 대비와 준비 필요

'한국최초 인천최고'는 국내 클래스는 물론 월드 클래스 수준에서도 광고자원이 아니다. 세계 관광객에게는 통하지 않는 우리만의 자부심이다. '경주 십원빵' 같은 명물 하나 없는 우리는 미래에 유용하고 대체 불가능한 도시 유전자를 찾아서, 선진국의 문화 수준을 넘으면서 모든 시민이 향유할 보편적 문화 도시를 창출해야 한다. 개성과 특색, 변화와 질서, 전통과 새로움, 경관과 미학 그리고 색감이 풍부한 건물들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유명 커피 체인점 CEO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 우리는 지나가다 들리는 장소가 아니라 일부러 목적지로 삼아 방문하는 장소이고, 매장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만들어야 한다”. '장소'와 '매장'의 단어를 '도시'로 바꾸면 문화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인천이 문화 도시를 향한 의지와 열망은 있는가? 세계적으로 '유럽문화도시', '유럽문화수도', '아랍문화도시', '아메리카문화도시', '동아시아문화도시' 등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문화도시' 사업이 있다.

부평구는 2021년에 문화도시로 지정되었지만, 연수구와 서구는 법정문화도시에서 최종 탈락했다. 이런 국책 사업에 인천시 차원에서 지자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도시는 지도자가 변해도 오래 가야 하고, 누가 시장을 하더라도 문화에 몰입하여 오래 번영할 그런 문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인천시민도 시정부도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작은 시도마저 망설이지 않고 실패를 하더라도 예산 지원을 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 시행착오가 거듭되다 보면 인천다움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천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자원을 발굴하고, 없으면 창조해서 미래 유산을 축적하고, 개성과 특색을 찾아 50~100년 후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문화 도시 로드맵을 짜야 인천의 미래가 있다.

▲ 전찬기 인천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 전찬기 인천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전찬기 인천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공동기획=인천일보·인천학회·인천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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